누드·미인도…화끈한 에로티시즘의 유혹
“내가 여성의 누드를 그리는 것은 여체가 자아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서다. 따라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창조적인 데폼(deform)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의 창조에 있다. 이상적인 선의 아름다움이 자아내는 매혹적인 선율,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미와 행복을 동시에 찾아내는 것이다.”

작년 11월 43세 연하의 부인을 잃은 원로화가 김흥수 씨(93)가 설파했듯 예술가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과 아름다운 여체를 화폭에 담아왔다. 왜 수많은 예술가가 여체를 주제로 삼았을까. 여성은 아름다움과 욕망의 대상인 동시에 따뜻한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 등 다양한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예술가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짙은 에로티시즘과 여인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한 두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롯데갤러리의 ‘화가의 여인-나부’(20일까지)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코리아나미술관의 ‘자인-미인도전’(28일까지)이다.

누드·미인도…화끈한 에로티시즘의 유혹
롯데갤러리에서 펼쳐지고 있는 ‘화가의 여인-나부’전에는 작고한 작가 박생광 이인성 최영림 권옥연 남관 박영선을 비롯해 김흥수 구자승 장리석 천경자 황영성 황용엽 등 1930년대 이후 활동한 유명 화가 41명의 작품 50여점이 걸렸다. 여체의 이미지를 녹여낸 출품작들은 현대미술의 다양한 프리즘을 보여준다. 모성적인 여인의 맵시, 욕망의 대상, 자연과 어우러진 자태 등에서 여인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천재 화가 이인성의 1935년작 ‘초록색 배경의 누드’는 초록색 바탕에 화병과 테이블을 배경으로 뒤돌아선 여인의 모습을 드라마틱하게 잡아낸 작품이다. 일본의 아카데믹한 미학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에 특유의 건삽(乾澁·유화가 말라 윤택이 없음) 기법으로 향토적 분위기를 되살려냈다. 해방 후부터 말년까지 한결같이 누드화를 그린 박영선의 ‘아뜰리에’는 파리 유학시절 파리지앵을 모델로 그린 작품. 우윳빛 피부와 굴곡진 여체에 생동적인 에로티시즘이 녹아있다.

천경자 씨의 1962년 대작 ‘전설’도 나왔다. 당시 가정적으로 행복한 시기를 보낸 작가의 모습을 반영하듯 여인의 맵시를 한껏 살려낸 작품이다. 화려한 색채화 기법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여인의 자태에서 초월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북한에 처자식을 두고 피란 온 이후 절망의 늪에서 헤매던 시절 실향민의 애틋한 마음을 여체로 표현한 최영림의 ‘비둘기와 여인’, 임신한 여인을 그린 ‘꼽추 화가’ 손상기의 ‘초조’(1986), 단아한 여인의 모습을 통해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 장리석의 작품, 완벽한 데생력으로 생동감 넘치는 여인의 나체를 그린 박득순과 구자승의 누드화 등도 강한 미감으로 다가온다.

한국과 프랑스 작가들의 다양한 미인도도 도심 미술관을 수놓고 있다. 코리아나미술관에서는 마리 로랑생, 장 밥티스트 상테르를 비롯해 김은호 장우성 김기창 장운상 박창돈 박항률 고낙범 서니킴 배준성 성지연 등 근현대 미술가 28명의 그림 47점을 만날 수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화가들은 여체를 통해 인간의 희로애락을 묘사한다”며 “이미지에 집착하기보다 작가의 내면을 찾아가다 보면 진정한 예술적 가치를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