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中企 "주·월간 단위로 쪼개 비상경영"
인천에서 스마트폰 검사 장비를 만드는 C사의 K사장은 지난달 700만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요즘 밤잠을 설치고 있다. 계약 체결 당시 달러당 1081원이었던 환율이 한 달 만에 1057원으로 24원이나 떨어지면서 환차손이 눈덩이처럼 커졌기 때문이다. K사장은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대략 20억원 정도 줄어든다”며 “수출이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90%에 달하기 때문에 올해 사업계획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할 판”이라고 하소연했다.

경기도에서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에 들어가는 전자부품을 생산, 70%를 수출하는 A사의 P사장은 ‘연간’ 단위 경영계획 수립을 아예 포기했다. 1년은커녕 한 달 후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환율 등 대외 변수가 급변동하고 있어서다. 그는 “1월이 다 가도록 경영계획을 못 세우는 것은 7년 전 사업을 시작한 이래 이번이 처음”이라며 “월간, 주간 등 작은 단위로 쪼개 회사를 운영하는 ‘시나리오 경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새해 벽두부터 중소기업에 초비상이 걸렸다. 달러 대비 원화 값이 거침없이 오르면서 잉크도 채 안 마른 경영계획서를 백지화하거나 다시 고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 자동차 부품업체의 S사장은 새해 들어 2주일 넘게 ‘키코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환헤지를 위해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금융회사로부터 대출 상환 압력에 시달리는 꿈이다. 그는 “환헤지를 하긴 해야 하는데 키코로 5년 동안 고생한 동료 기업인이 자꾸 떠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그냥 손을 놓고만 있을 수 없어 수출액의 3분의 1 정도만 선물환을 써 보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푸념했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묘수가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 중소기업인은 “현재 환율에서는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고객사에 결제일을 두 달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며 “시간이 지나면 환율이 오를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지만 정부도 손쓰지 못하는 걸 중소기업이 어떻게 하겠느냐”고 넋두리했다.

실제 중소기업들의 환위험 관리 실태는 취약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112개 수출 중소기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65.1%가 “환율 리스크 관리를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환변동보험 상품 등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는 응답은 18.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환변동보험 같은 환위험 관리 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을 것을 당부했다. 홍성철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환변동보험 가입을 유도하고 중소기업 대상 환율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소기업도 결제 통화를 다변화하거나 수입과 수출을 동일한 외화로 매칭하는 등의 자구적인 노력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