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사장이 되고선 7월부터 12월27일까지 6개월에 걸쳐 생산직 사원을 모두 만났습니다. 20~30명씩 나눠 750명이랑 모두 한 잔씩 소주잔을 기울였죠.” 33년 동안 주류영업 일선을 누빈 장인수 오비맥주 사장(58)은 최고경영자(CEO)가 되고선 생산직부터 챙겼다.

“생산직 현장을 돌 때는 저녁을 먹는 데 4시간씩 걸렸죠. 각자 건배제의를 하기 전에 질문도 하고 건의도 하라고 했더니 450여개의 건의가 들어왔고, 이 가운데 400개 정도는 해결해줬습니다. 직접 만나 보니까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엄청나다는 걸 느꼈고요. 1등에서 2등으로 떨어져 15년의 쓴맛을 보다가 다시 1등이 되니까 그걸 놓치지 않으려는 거죠.”

장 사장은 오비맥주가 2011년 하이트진로를 제치고 맥주시장 선두자리를 15년 만에 탈환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업계에서는 ‘고신영달’(고졸신화·영업달인)의 상징적 인물로도 통한다. 1973년 대경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6년 삼풍제지 경리부에 입사했다가 그만두고 ‘영업을 하고 싶어’ 1980년 옛 진로에 입사했다.

이후 30여년 동안 진로 서울권역 담당 상무, 오비맥주 영업총괄 부사장 등을 거치며 험하기로 소문난 주류영업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달인이 됐다. 2012년 오비맥주 사장이 된 뒤에도 ‘영업본부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영업전선에서 신속한 결정을 내려주는 사람이 있어야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술을 못했던 술영업 달인

장 사장이 즐겨 찾는 단골 음식점은 대부분 그의 ‘영업맨’ 인생과 연관이 있다. “1차 거래처인 주류 도매상 사장들이 대부분 지역 유지입니다. 자기 영업권역 내에 있는 싸고 맛있는 집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죠. 영업하느라 그들을 쫓아다니다 보면 맛이 뛰어난 식당을 많이 알게 됩니다.” 한국경제신문과의 ‘맛있는 만남’을 위해 지난 9일 저녁 그가 찾은 서울 서초동의 ‘위대한밥상 영광’도 이렇게 알게 된 식당이다.

장 사장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터지기 사흘 전인 1980년 5월15일 진로에 입사했다. 80명을 뽑는데, 4000여명이 지원했을 정도로 진로는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들어가고 싶은 직장이었다.

장 사장은 태권도 6단에 사범 및 심판자격증을 보유한 ‘선출’(‘선수출신’의 줄임말)이다. 술 회사에 입사하기 전만 해도 술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주류사관학교’에, 그것도 “영업을 하겠다”며 들어왔으니 음주는 일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선배들의 ‘술교육’도 엄했다.

“서너 개 테이블 건너에 앉아 있는 선배들이 ‘마시라’며 소주잔을 휙 던져댑니다. 그러면 곧바로 털어넣어야 돼요.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담아 ‘원샷’으로 마시는 것은 기본이었죠.”

이런 얘기를 들으면 ‘주량이 보통은 아닐 것’이라고 짐작할 만하다. “주량이 얼마냐”는 질문을 던지자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함께 마시는 사람의 주량을 맞춰주기 때문에 주량이 따로 없습니다. 술을 못마시는 사람과 마실 때는 아예 안 마시고, 술이 센 분과 함께 할 땐 많이 마시죠. 다만 ‘술자리는 상대방이 떠날 때까지 같이한다’는 원칙은 꼭 지키고 있습니다.”

이쯤 해서 술잔을 상대방 쪽으로 기울여서 건배하는 걸 시연해보였다. 본인 잔에 든 술의 일부가 상대방 잔으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한바탕 웃음이 흘렀다.

술을 잘하는 장 사장이지만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2010년 오비맥주로 자리를 옮긴 뒤에 아내가 좋아해요. 주종(酒種)이 소주에서 맥주로 바뀐 이후 괴로워하며 잠드는 경우가 확 줄었거든요. 쉬는 날 가족끼리 집에 있을 때는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습니다.” 집에도 TV 양쪽에 각종 술을 전시해 놓아 ‘주류박물관’이라고 할 만하지만, 뚜껑을 연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집에선 술을 안 하기 때문이다.

◆“영업은 사람 마음을 뺏는 것”

술 얘기로 시작된 저녁 자리가 1~2시간 정도 흐르면서 이 식당이 자랑하는 병어 굴비 등이 하나둘 등장했다. 그런데 장 사장이 요리를 좀체 입에 갖다대지 않았다. “낮에 전국 종합주류도매업중앙회 회장단 신년모임이 있었습니다. 오후 4시까지 20명의 전국 협회장과 식사와 술이 이어지다 보니 좀처럼 음식이 들어가지 않네요.”

오랜 주류영업에서 겪은 ‘일화’는 끝이 없었다. 영업사원 시절 동료와 선배들이 5~6개 거래처를 담당할 때, 혼자서 19개 거래처를 맡아 수년간 매일 포니 자동차로 200㎞ 이상 달리기도 했다. 점심부터 시작한 술자리가 밤 12시를 훌쩍 넘긴 일도 있었다.

장 사장은 “영업의 기본은 상대방의 마음을 뺏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렇게 해야 상대방이 좋아하게 되고, 그런 마음이 영업직원의 소속 회사로 이어져 회사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는 지론이다.

장 사장이 ‘상대방의 마음을 뺏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경조사 챙기기다. 주류업계에는 “업계 관계자 경조사에 장 사장이 안 나타나는 경우는 없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경조사를 대하는 그의 마음가짐은 보통사람과 다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는 마인드다. “매일 밤 늦게 들어오니 아내와 데이트할 시간이 없지 않습니까. 그럴 때 지방 먼 곳에서 주말에 경조사가 생기면 아내와 함께 내려가기도 합니다. 경조사도 챙기고 데이트도 하고, 일석이조죠.”

2010년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그가 오비맥주에 온 뒤 이 회사 영업직원들은 거래처 상가(喪家)에서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법이 없다. 음식 나르기는 기본이고, 심지어 발인식까지 참석하고 오도록 그가 훈련시켰기 때문이다. “음식 나르기부터 발인까지 챙기고 나면 그 회사 직원들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이 박힐 수밖에 없죠. 그런 자리에는 업계 관계자가 많이 찾는 게 일반적이니 업계에도 좋은 ‘입소문’이 나게 마련이고요. 이런 일들이 잦아지게 되면 회사에 대한 고객의 신뢰도 한층 더 쌓이게 되는 겁니다.”

1984년 경기도 이천지역 영업을 담당하던 당시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깡패 유지광 씨와 한때 인연을 맺은 것도 그의 영업철학과 관련이 있다. “이천지역을 맡기 전에 그곳에서 주류 도매상을 운영하던 유지광 씨가 수년에 걸쳐 회사 선배들에게 부탁했던 ‘민원’이 있었어요. 선배들이 꺼렸던 일을 적극적으로 회사를 설득해 해결해줬더니 그 이후에 큰 도움을 주셨죠.”

"누구와 치고 누구와는 안칠 수 없어 골프 즐기지 않아"

◆식문화가 만드는 맥주 맛

인터뷰가 시작되고 몇 시간이 흐르자 상이 음식으로 가득 채워졌다. 밥상머리 화제가 자연스레 한국의 맥주 맛으로 이어졌다. ‘주당’들에게 한국맥주는 ‘밍밍해서 영 맛이 없다’고 인식돼 있다. “한국 맥주회사들의 기술력은 세계 유명 주류회사 못지 않은 수준입니다. 한국의 식문화가 맥주 맛을 그렇게 만든 거죠. 한국의 음주문화가 반찬을 여러 개 차려놓고 식사와 함께 술을 즐기는 스타일이지 않습니까. 맥주분야에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등 유럽지역의 맥주는 다소 무거워서 마시고 나면 포만감이 느껴집니다. 한국 식문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구석이 있는 셈이죠.”

작년부터 막걸리의 인기가 급격히 식은 것도 이런 한국식 음식문화와 연관이 있다는 게 장 사장의 생각이다. 그는 “벨기에 인베브의 프리미엄 밀맥주 ‘호가든’을 벨기에 이외 지역에서 생산하는 국가는 한국과 러시아밖에 없다”며 “그만큼 한국 맥주회사의 기술력은 높은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돌격 앞으로”보다는 “나를 따르라”

3시간쯤 지날 무렵 마지막 식사메뉴인 녹차물밥과 보리굴비가 나왔다. 항상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영업현장을 누볐던 장 사장이었지만, 3년 전 오비맥주에 처음 왔을 때에는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난감했다. 하이트진로에 밀려 10년 이상 2위로 내려앉아 있다보니 고객들의 신뢰와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져 있었다. 살아남으려면 변화하는 길밖에 없었다.

“직원들에게 변화할 것을 주문하면서 나부터 변할테니 나를 따르라고 얘기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는 장교들이 ‘나를 따르라’고 하지, 절대 ‘돌격 앞으로’라고 안 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앞장서 지휘하다보니 장교들의 사망률이 높지만, 성과는 뛰어나다는 것이죠. 리더십의 요체는 결국 솔선수범이 될 수밖에 없어요.” 지난해 오비맥주가 하이트진로를 제치고 15년 만에 맥주시장 1위를 탈환한 데는 장 사장의 이런 ‘솔선수범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는 게 주류업계의 평가다.

골프를 즐기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거래처 사장님들이 워낙 많아 누구와 치고 누구와는 못치는 상황이 되니까 도저히 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회의도 싫어한다.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여야 할 상황에서 회의하는 데 들일 시간이 없다는 설명이다. 대신 사전에 목표를 제시하면서 ‘이런저런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명확한 지침을 줘 혹시나 발생할지 모를 사고를 막는 데 주력한다. “너무 많이 아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불편할 수도 있는데, 사전에 잔소리를 많이 하고 지나간 일에 대해선 잘못이 있어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일단 사고가 터지고 나면 수습하는 게 먼저이지 혼을 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거든요.”


장인수 사장의 단골집 위대한밥상 영광 병어찜에 삼합·메로구이 등 푸짐

토속한정식집 ‘위대한밥상 영광’의 요리는 양념을 찾기 힘들다. 통통한 갈치구이는 은빛을 간직하고 있고 꼬막과 전복도 생살 그대로 익혀 나온다. 부족한 간은 병어구이와 간장게장으로 맞춘다. 보리굴비와 시원한 녹차로 입을 씻는다. 강렬한 절정을 향해 내닫는 일반 코스요리와 달리 시종일관 부드러운 맛이 이어진다.

그래서 속이 불편하거나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도 자주 찾는다. 가톨릭병원, 산업은행, 금융감독원 임직원들과 이종걸, 최규성 국회의원이 단골이다. 서울 강남 교보타워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 10년 전 문을 열었고, 지난해 맞은편 건물 지하로 옮겼다. 룸으로 구성돼 조용히 대화하며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수산물은 냉동이 아닌 생물만 쓴다. 이른 새벽 가락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실어온다. 삼합, 단호박죽, 병어찜, 메로구이, 해물낙지볶음, 찌개, 알배기간장게장, 굴비로 구성된 코스가 4만3000원. 보리굴비, 갈치구이, 생물전복 중 한 가지를 추가하면 5만원. 세 가지 모두 추가하면 7만원이다. (02)3482-6622

송종현/최만수 기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