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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企 울리는 특허소송] "특허권 인정받았는데 계속 소송당해…기형적 제도에 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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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허공방하다 사업 접은 건국산업 박진하 사장

    휴대용 가스레인지 폭발방지 특허 등록에도 분쟁 계속돼…회삿일은 뒷전 결국 사업 포기
    소송걸면 절반 넘게 취소…재판부 전문성 높이고 투트랙 소송 체계 손봐야

    휴대용 가스레인지에 대한 국내외 특허를 갖고 있는 건국산업 박진하 사장. 그는 휴대용 가스용기 압력을 낮춰 폭발을 근원적으로 막는 독보적 기술을 갖고 있다. 용기 내부에 이상 압력이 감지되면 용기를 레인지로부터 탈착시키는 범용(일반) 기술과는 다르다. 이 기술은 2001년 특허출원된 후 2004년 국내 등록됐고, 2007년까지 미국 중국 대만 홍콩 등 각국에 등록됐다. 그러나 2003년 이후 각 기업이 무차별 걸어온 무효소송 등으로 인해 그는 현재 사업을 포기하고 오직 소송에만 몰두하고 있다. 내년 1월에는 대형마트 등 가스레인지 제조·유통·판매에 관여해온 다수 업체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걸 계획이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특허 공방 거듭하다 생업 뒷전

    가장 먼저 박 사장에게 공격을 걸어온 곳은 L사다. L사는 그가 갖고 있던 가정용 가스레인지 화재예방 장치에 대한 이의신청을 2003년 12월 냈다. 수동식 타이머를 설정해 가스밸브를 내리지 않아도 가정용 가스레인지가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기술이다. 이듬해 9월 특허청은 등록취소 결정을 내렸고, 이는 2007년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반면 자동식 전자타이머를 설정해 레인지를 자동으로 꺼지게 하는 기술은 공격받지 않아 여전히 그가 특허권자다.

    2004년부터는 박 사장이 보유한 휴대용 가스레인지 폭발방지 장치 특허(이후 해당 특허)에 대한 공격 및 방어가 이어지며 오락가락 판결이 나왔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제조업체 A사는 2004년 특허심판원에 해당 특허 무효소송을 냈다. 이는 2006년 1월 기각됐고, 박 사장은 같은 해 9월 A사에 특허침해금지 가처분소송으로 역공을 했다. 이 사건은 1심(대전지법)에서 기각됐다가 2심(대전고법)에서 결국 박 사장의 승리로 끝났다.

    그와 B사가 벌인 소송도 우여곡절이 많다. 박 사장은 B사가 2004년 해당 특허를 침해해 제품을 판매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2006년 대전지법에 제조 및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에 B사는 해당 특허 무효소송으로 맞불을 놨다. B사가 제기한 무효소송은 2008년 2심(특허법원)에서 취하됨에 따라 해당 특허가 지켜졌다. 한편 박 사장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은 1심에서 기각됐다가 2심에서 받아들여졌다. 박 사장은 “소송을 하면서 도저히 여력이 안 돼 사업을 포기했다”며 “현재 특허소송제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기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A, B사 등 제조업체와 대형마트 등을 상대로 특허침해 손해배상을 지속해 정당한 권리를 찾겠다”고 덧붙였다.

    ◆재판부 전문성 높일 제도적 장치 필요

    전문가들은 △높은 무효율 △이원화된 소송체계 △법원의 전문성 부족 등을 특허소송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최근 3년간 1심(특허심판원) 특허 무효심결 인용률(인용건/전체 심결건)은 평균 55.5%다. 각하와 취하 건수를 빼면 비율은 70%선까지 올라간다. 특허 무효소송을 걸면 10개 중 5~7개가 취소된다는 뜻이다. 박성필 KAIST 지식재산대학원 교수는 “높은 특허 무효율은 선행 기술 검색이 부실해 등록해서는 안 되는 특허를 등록했거나, 특허 등록 건수를 무조건 높이려는 정책적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말했다. 미국 일본 유럽 등과 비교했을 때 2011년 국내 특허심사관 1인당 처리 건수는 271건으로, 최대 5.7배가량 많다. 부실한 심사가 높은 무효율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박 교수는 “특허 심사는 행정 업무고, 무효소송은 어떻게든 ‘구멍’을 찾아내려는 사활을 건 전략이기 때문에 1 대 1로 비교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원화된 소송체계도 문제다. 현재 특허침해 및 가처분소송은 지방법원→고등법원→대법원, 특허무효소송은 특허심판원→특허법원→대법원을 통해 이뤄진다. 권리범위확인심판은 원칙적으로 특허심판원이 하지만 침해 및 가처분소송에서 실질적으로 권리범위를 설정하기 때문에 양쪽 판단이 뒤죽박죽이 되거나 소송이 무작정 지연되는 사례가 많다. 박 사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국가지식재산위원회는 침해소송 1심은 서울중앙·대전지법, 2심은 특허법원에서 전담하도록 하는 관할집중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무효심판 후 기업이 망해버린 경우도 있다. 2003년 키보드해킹 방지 기술을 특허등록하고 창업했던 T사의 남모씨는 현재 사업을 접고 방황하고 있다. S, I사 등 경쟁 업체 3개사가 제기한 특허무효소송이 인용되면서 T사가 지난해 말 파산했기 때문. 그런데 문제는 이 기술이 미국 중국 홍콩 호주 등에서는 엄연히 등록돼 있다는 것이다. 남씨는 “미국이 우리 기술 특허등록의 주요 기준으로 삼았던 ‘기술의 진보성’ 판단 부분을 국내 법원은 정반대로 해석해 소송에서 졌고 이후 모든 걸 잃었다”고 말했다.

    강인규 KAISTIP(KAIST 지식재산관리회사) 사장은 “기술자문 인력을 대폭 확충해 법원 재판부의 전문성을 제고, 특허소송의 예측 가능성을 시급히 높여야 한다”며 “현재 각 대학 및 공공연구기관에 라이선스 이전이 되지 않는 억지 특허가 너무 많은 것도 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특허법원에 파견돼 있는 특허청의 기술심리관(자문관) 수는 15명에 불과하다.

    특허침해 손해배상액 대부분 5500만원선…변호사 선임비용도 안돼

    국내 특허소송의 또 다른 문제는 침해에 상응하는 손해배상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정책연구사업에 따라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올해 8월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0~2009년 특허·실용신안 침해소송 1심 배상액의 중앙값(값들을 정렬했을 때 가운데 위치한 값)은 5000만원이었다. 2009~2011년 판결이 내려진 특허·실용신안 침해소송 22건의 1심 배상액 중앙값 역시 5500만원이었다. 미국 등은 손해배상액의 적정 규모를 가늠할 때 일부 특이하게 많은 손해배상액을 제외하기 위해 ‘평균’이 아닌 ‘중앙값’을 기준으로 한다. 또 2000~2009년 대법원에서 확정된 손해배상판결 203건을 분석한 결과 배상이 최종 확정된 금액은 당초 청구금액 2447억원의 8.5% 선인 209억원이었다.

    이 보고서는 “침해소송을 벌이는 데 변호사 비용이 보통 수천만원에 달한다고 볼 때 현 손해배상액은 변호사 비용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며 “국내 손해배상액의 중앙값은 미국과 비교하면 백수십분의 1에 불과하다”고 분석했다. 중소 정보기술(IT)업체 부사장 이모씨는 “(대기업, 업계 선도기업 등) 소송을 진행할 여력이 충분한 경우는 오히려 (개인·중소기업) 특허를 침해하는 게 낫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현재 특허법상 서류 제출 규정도 한몫 했다. 특허법 132조는 법원이 특허권 침해로 인한 손해액을 계산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소송 당사자에게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를 뒀다. 침해(추정)자가 특허침해 제품의 판매 수량, 원가, 매출액 등에 대해 ‘민감한 영업비밀’을 이유로 제출을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고, 정확한 손해액 산출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법원이 적극적으로 제재하거나 미국처럼 징벌적손해배상제를 도입해 강한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전=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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