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 4곳 중 3곳이 안전관리를 부실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화학물질 사업장에 대한 대규모 감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용노동부는 화학물질을 제조·수입·유통하는 사업장 684곳을 지난 6~8월 감독한 결과 509곳이 안전관리 의무 미이행으로 적발됐다고 26일 발표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며 위반율로는 74.4%다. 적발된 사업장은 대부분 중소기업이지만 대기업도 적지 않았다. 창원에 공장을 둔 삼성테크윈은 제1공장과 제2공장 두 곳이 적발됐다. 노루페인트, 대림화학, 동아제약 달성공장, KCC 천안공장 등도 적발돼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

고용부는 이번 감독에서 사업주가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근로자들에게 제대로 인식시키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산업안전보건법은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작성해 근로자가 잘 볼 수 있는 곳에 게시할 것 △MSDS를 근로자가 충분히 숙지하도록 교육할 것 △화학물질을 담은 용기에 경고표시를 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MSDS는 화학물질의 유해성, 취급 주의사항 등을 적은 일종의 ‘화학물질 취급 설명서’다. 이를테면 벤젠을 다루는 근로자에게는 MSDS와 경고표시를 통해 그 물질이 발암물질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위험한 물질이라는 인식이 있으면 보호장구를 반드시 착용하는 등 안전관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는 설명이다.

미국 유럽 등 산업 선진국에서는 이미 수십년전에 이러한 정책을 도입하고 강력하게 단속해오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83년 ‘유해물질정보제공에관한기준’(속칭 알권리법)을 통해 화학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게 근로자의 ‘알권리’에 속한다고 규정했다. 유럽연합(EU)은 ‘작업장 안전보건기구’를 설치해 이러한 규정을 준수할 것을 회원국들에게 요구한다. 한국에서는 MSDS 제도가 1996년 도입됐지만 단속이 거의 없어 사실상 관리감독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근로자가 화학물질에 중독 또는 질식되는 사고는 지난해 414건이 발생했으며 올해도 10월 말까지 395건이 나왔다.

문기섭 고용부 산재예방보상정책관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주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이번 감독을 시작으로 앞으로는 매년 감독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철갑 조선대 의학과 교수는 “중소기업은 경영자가 그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곳이 많을 것”이라며 “사업주에 대한 계도를 단속과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