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아의 그림이 단순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원하는 게 느껴져요. 가슴 아픈 불행의 씨앗이 어느 순간 발효돼 꽃을 피울 자양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 6명과 함께 지난해 6월부터 519일 동안 부산 전주 제주 가평 청주 춘천 등에서 ‘발달장애 청소년들과 그림전’을 펼친 팝아티스트 안윤모 씨(51)의 ‘함께하는 예술론’이다.

긴 여정을 마치고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519일의 여행’을 테마로 결산전을 열고 있는 안씨는 “발달장애 아이들이 그림을 통해 세상과 좀 더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며 “더 많은 장애인에게 기쁨을 주고 그들에게 한발짝 더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물을 의인화해 현대인의 삶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그는 강원고 2학년 때 미술 선생님의 권유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교사인 어머니의 지원도 큰 힘이 됐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홍익대 미대에 입학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정화여고에서 3년간 미술교사로 재직한 그는 1989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시립대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1년간 맨해튼의 그래픽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했다. 귀국 후 경기도 안산에 작업실을 차린 그는 2006년 서울대병원 자폐 아이들과 갤러리 우덕에서 그룹전을 하며 소외계층과의 소통을 시작했다.

“교사 시절 학생들을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터득한 ‘함께하는 예술’을 실천해 보고 싶었어요. 진정한 예술은 나눔과 사랑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제가 미술을 하는 이유이고, 믿음이지요.”

그는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언어 표현이 서툴고 부자연스럽지만 이들이 전하고 싶은 생각을 그림이라는 언어로 나타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입양아 아티스트 3명과 ‘긴 여행’이란 제목으로 경기도 가평의 갤러리 ‘나무가 있는 오후’에서 기획전도 열었다.

“유난히 말이 없는 아이, 눈을 마주치지 않는 아이, 소리를 지르는 아이 등 6명의 그림과 제 그림을 함께 걸었습니다. 저는 일방적으로 아이들을 돕는 게 아닙니다. 상부상조하는 관계죠. 이들에게 상생과 소통의 지혜를 일깨워주고, 그들은 제게 예술 인생의 모티브를 제공합니다.”

내달 16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결산전에도 장애아들의 그림과 그의 팝아트를 함께 걸었다.

“이번 전시는 수백 건의 전시 중 하나일 뿐이죠.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할지 모르고요.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지난달부터 제주 현대미술관에서 ‘장애우 돕기 종이컵 그림 프로젝트’도 시작한 그는 내년에 뉴욕, 파리, 런던 등 해외 투어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02)734-0458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