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효주와 고수가 주연한 로맨틱코미디 ‘반창꼬’가 할리우드 대작 ‘레미제라블’ ‘호빗:뜻밖의 여정’ 등과 흥행 경쟁을 펼치고 있다. 25일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 영화는 24일까지 17만명을 모아 개봉 이후 5일간 총 87만명의 관객을 끌어들였다. 하루 입장객 기준으로 ‘호빗’을 제치고 ‘레미제라블’에 이어 2위다.

‘반창꼬’는 의료사고를 일으킨 여의사 한효주와 분쟁 해결의 열쇠를 쥔 소방관 고수가 펼치는 알콩달콩 로맨스. 한효주가 비속어를 거침없이 내뱉는 뻔뻔한 캐릭터를 맡아 고수와의 관계를 주도한다.

연말 극장가에 이 같은 여배우들의 힘이 강력하다. ‘톱10’에 오른 5편의 한국영화에서 여배우들이 핵심 인물로 흥행을 견인하고 있다. 한효주와 김아중 손예진 한혜진 김민정 박보영 등은 남자 주인공의 보조 파트너 역할에 그치지 않고 남성과의 관계를 이끄는 능동적인 배역을 맡았다. 특히 한효주는 스물다섯 살, 박보영은 스물두 살에 불과해 20대 주연 여배우 기근에 시달리는 충무로에 단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김아중은 이달 초 개봉해 이날까지 관객 167만명을 기록한 로맨틱코미디 ‘나의 PS파트너’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대박 로맨틱코미디 ‘미녀는 괴로워’(661만명) 이후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손익분기점인 140만명을 넘겼다. 그의 매력적인 연기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극중 남자 파트너 지성과의 관계 맺기에서도 은밀한 속내를 먼저 드러내며 두 남자 사이에서 진실한 사랑을 찾아간다.

손예진이 주연한 대형 재난영화 ‘타워’는 개봉일인 24일 밤에만 10만명을 모았다. 여의도의 초고층 빌딩에 발생한 화재를 다룬 이 작품에는 설경구와 차인표, 김상경 등 유명 남자 배우들이 즐비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배역은 레스토랑 매니저 역 손예진이다. 그는 참사 현장에서 역경을 딛고 살아남는다.

한혜진은 이날 현재 관객 290만명을 기록 중인 ‘26년’의 중심 인물. 1980년 광주 학살의 주범을 처단하는 스토리에서 저격수로 등장해 흔들림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안방극장에서 활약해온 그가 스크린에서도 힘있는 연기를 보여주며 충무로의 재목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확인시켰다. 그동안 쌓아온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이 영화가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개봉 5일 만에 62만명을 동원한 조폭 코미디 ‘가문의 귀환’에서는 김민정이 단연 돋보인다. 왕년의 ‘타짜’ 경력을 감추고 자선재단의 살림을 꾸리면서 복부인들과 화투판에서 번 돈을 모두 기부한다.

박보영은 700만명을 돌파한 멜로 ‘늑대소년’에서 남주인공 송중기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으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과속스캔들’(824만명)에 이어 또다시 대박을 터뜨렸다.

여배우들이 이처럼 맹활약하고 있는 것은 액션과 범죄, 스릴러 장르가 주도한 2006~2010년에 비해 지난해부터 멜로와 로맨틱코미디 등이 살아나는 추세와 관련이 깊다. 올 상반기 흥행작인 ‘건축학개론’의 수지와 한가인,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임수정 등도 마찬가지다. 액션물 ‘도둑들’에서도 전지현·김혜수·김해숙 등 여배우들이 연령대별로 로맨스를 펼치며 흥행사를 다시 썼다.

영화 홍보대행사 올댓시네마의 김태주 팀장은 “여성 관객들은 남자 배우의 경우 외모에 관심을 보이지만 여배우들에게서는 적극적이며 활동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한다”며 “최근 흥행작들에서는 여배우들이 관객들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줬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