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2004년까지 180조원을 표준 통합에 사용했습니다. 통일 이전의 독일보다 교류가 적은 남북한이 준비 없이 합치게 되면 이보다 더 큰 재정적 부담을 안을 수 있습니다.”

이은정 베를린자유대학 한국학연구소장은 최근 한양대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에서 열린 ‘컴퓨터 자판조차 다른 남북, 통일 대비 표준 정비 시급하다’ 콘퍼런스 기조연설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 소장은 독일 게오르크-아오구스트대에서 정치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마틴루터 할레-비템베르크대 정치학 교수, 일본재단 연구원 등을 지냈다. 이번 행사는 남북한의 서로 다른 기술 표준 현황을 점검하고 통일에 대비한 통합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로 한국경제신문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후원했다. 이날 행사엔 국내외 표준 분야 전문가와 학계, 산업계 관계자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 소장은 “동독은 과거 동구권 국가 중 소련 다음으로 경제, 과학기술 역량이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비용의 10% 이상을 표준 통합에 사용해야 했다”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2008년 기준 구 동독 지역의 경제활동인구당 총생산은 서독 지역의 77.9%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기술 격차가 심한 남북의 상황을 고려하면 통일 이후 독일보다 더 많은 표준 통합 비용을 지출할 수도 있다”며 “북한의 표준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박승남 한국표준과학연구원 기반표준본부장은 남북한의 표준체계 통합은 ‘절충’이 아니라 국제 기준에 맞추는 ‘단일’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본부장은 “남한의 측정 표준 체계를 북한에 접목시키기 위해 개성공단에 남북표준협력센터를 설립하는 등 전초기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재영 한국전기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단계별로 남북한이 전력에 대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연구원은 “우선 남북에너지협력위원회와 같은 남북한 공동 협력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며 “이후 배전망 표준화 사업부터 시작해 발전단지 및 기타 에너지 협력 사업 등으로 단계적으로 협력 범위를 넓혀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