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24일 오후 2시19분


연말을 앞두고 신용등급이 BBB급으로 주저앉는 대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조선 해운 건설업이 주력이라 올초부터 유동성에 대한 우려가 있던 회사들이 대부분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신용등급 조정에 따른 여파를 고려해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던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뒤늦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용평가사들이 일제히 미뤄왔던 신용등급 하향 조정에 나서면서 연말과 연초에 기업들의 등급 하락이 집중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신평사, 뒤늦은 하향조정”

24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STX 한진중공업 대성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했다.

A-였던 STX팬오션 STX조선해양 STX엔진 STX는 모두 BBB+로 떨어졌다. 해운·조선 경기 침체로 사업 여건이 나빠진 데다 대규모 투자로 재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홍석준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본격적인 업황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해 당분간 주력 계열사의 실적 부진이 불가피하다”며 “현금 창출 능력에 비해 외부 차입 부담이 과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완료됐거나 추진 중인 계열사 매각을 감안하더라도 전반적인 재무적 대응 능력이 떨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STX 국내 계열사의 총 차입금(올 9월 말 기준)은 12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국내 공모사채만 1조5000억원 안팎이다. 이번 등급 조정으로 회사채 차환 발행에 따른 STX 계열사의 금융비용 부담이 확대될 전망이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사업·재무 상황을 고려했을 때 수년간 STX 계열사는 A급에 걸맞지 않은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혀왔다”며 “신용평가사의 후행적인 평가이기는 하지만 주요 계열사의 무더기 등급 조정으로 STX는 실질적인 BBB급 그룹으로 전락했다”고 언급했다.

“A급 기업 등급 하락 이어질 듯”

대성 계열사도 채무 부담과 더딘 재무구조 개선작업으로 인해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지주사인 대성합동지주는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이 A2-에서 A3+로 떨어졌다. 회사채 신용등급 체계로 바꾸면 A급에서 BBB급으로 전락한 셈이다. 대성산업의 금융권 차입을 위해 우량 자회사인 대성산업가스 지분을 담보로 제공한 영향이 크다. 이 때문에 자체 차입금에 대한 자산 대응 능력이 약화됐다는 게 신용평가사의 판단이다.

석유제품 유통 외에 디큐브시티 개발로 소매유통·호텔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한 대성산업은 종전 A-에서 BBB+로 내려왔다. 디큐브시티의 영업적자가 지속되고 있는 데다 건설 분양경기 부진으로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우발채무가 현실화돼서다.

계열사 중 신용등급이 가장 높은 대성산업가스는 A에서 A-로 조정되면서 간신히 A급을 유지했다. 국내 산업가스시장 2위(매출 기준)의 탄탄한 지위를 갖고 있지만 계열사의 신인도 하락으로 직·간접적인 재무 지원 가능성이 높아진 탓이다.

2007년 한진중공업홀딩스에서 조선·건설 부문이 인적 분할돼 설립된 한진중공업은 A에서 A-로 하향 조정됐다. 조선 부문의 외형 감소와 수익성 악화가 이어져서다. 수주 잔액은 빠르게 감소하고 있으며 순차입금(올 9월 말 연결 기준)은 3조원대에 이르고 있다.

김봉균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유형자산 매각이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며 “수주 역량 향상과 함께 재무구조 개선 노력의 성과를 꾸준히 관찰해 신용등급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류승화 NH농협증권 투자전략팀 부장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라 영업 실적과 재무상태 악화가 계속되고 있는 A급 기업에 대한 신용등급 하향 조정이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