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의 해'인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지만 초라하게 끝나 '용두사미(龍頭蛇尾)'의 형세를 보였다.

유럽 재정위기 심화와 세계 경기 둔화에 따른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IPO 시장을 덮친 탓이다. 이에 대어(大魚)로 손꼽히던 기업들이 상장을 줄줄이 철회, 2008년 이후 공모금액이 가장 적은 수준을 기록했다.

◇ 올해 공모금액 2008년 이후 '최저'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신규 상장한 기업 수는 27개, 총 공모금액은 9973억원으로 집계됐다. 오는 27일 코스닥시장에 상장 예정인 씨에스엘쏠라의 공모금액이 120억원으로 확정되면서 전체 공모금액은 1조원(1조93억원)을 겨우 웃돌게 됐다.

이에 따라 올해 IPO 공모 규모는 지난해(4조2557억원) 대비 76% 급감해 2008년(8069억원)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2010년 공모금액(10조907억원)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는 연초 기대를 모으던 현대오일뱅크, 미래에셋생명, 산은금융지주 등 대어급 공모주들이 잇따라 상장을 연기 혹은 철회한 결과다. 지난달 30일에는 상장을 앞둔 포스코특수강과 삼보 E&C가 수요예측에서 공모가가 기대 이하 수준으로 결정돼 상장을 철회했다.

올해 가장 큰 공모 규모(2932억원)를 기록한 CJ헬로비전도 대규모 일반공모 청약 미달 사태를 맞는 등 부진을 면치 못했다.

◇ 새내기株, 형님보다 아우가 나았다

올해 새내기주들 주가 성적표는 아우(코스닥)가 형님(유가)보다 우수했다.

24일 기준 올해 유가증권시장(7개) 상장사들의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평균 -10.53%를 기록했다. 7개 유가 상장사 중 AJ렌터카(26.86%), SBI모기지(18.29%)를 제외한 5개 상장사가 평균 -23.77%의 부진한 성적을 거뒀다.

반면 17개 코스닥 시장 신규 상장사들의 공모가 대비 수익률은 평균 18.12%를 기록, 상대적으로 양호한 흐름을 나타냈다.

특히 지난 2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취업포털사이트 업체인 사람인HR은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171.00%에 달해 가장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불황기 취업시장 경향 변화에 따른 수혜 기대와 대선을 앞둔 정책 수혜주 부각 등이 주가 상승을 이끌었다는 게 증권가의 분석이다.

◇ 증권사 ECM 부서 '보릿고개'

IPO 시장 부진에 증권사 주식자본시장(ECM) 담당 부서들도 힘겨운 시기를 감내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상장된 28개 기업의 IPO를 주관한 증권사는 총 14개사(공동주관사 포함)에 불과하다. 다수 증권사의 ECM 부서가 올해 제대로 된 실적을 올리지 못한 것이다.

상장을 추진하던 기업들이 철회 결정을 내리면서 증권사들이 진행하던 업무에 대한 대가를 지급받지 못한 사례도 잇따랐다. 통상 IPO 업무를 맡은 주관사들은 해당 기업이 상장한 뒤 공모자금의 일정 비율을 성공보수로 받기 때문에 해당기업이 상장을 철회하면 보수를 받지 못하게 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상장을 추진하던 기업이 철회 결정을 내리면 발생한 법무법인과 로펌 비용을 증권사가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며 "실질적으로는 적자를 보는 셈"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내년에도 뚜렷한 IPO 시장 회복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SK루브리컨츠와 현대로템 등의 대기업이 상장할 계획이지만 내년에도 기업 실적 악화 전망 등을 고려하면 IPO 시장 활성화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경닷컴 오정민 기자 bloom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