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단행된 약값인하의 여파로 다국적제약사에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한국화이자는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로 하고 규모와 조건에 대해 노사간 공식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고 12일 밝혔다. 이 회사 관계자는 “순수하게 희망퇴직을 한다면 경영권 행사 차원에서 수용하겠지만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퇴직은 안 된다는 게 직원들 기류”라고 말했다.

희망퇴직 접수는 글로벌 1위 제약사 화이자가 국내 진출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올해 약값인하로 4월 기준 보험등재 의약품 1만3800여개 가격이 평균 14% 인하됐고, 6500여개 전문의약품은 인하 폭이 더 컸다. 전문의약품 위주로 영업하고 있는 화이자가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또 화이자의 글로벌 히트상품 ‘비아그라’ 특허 만료로 인한 제네릭(복제약) 출시 등으로 이중 타격을 받은 상태다. 제네릭이 출시되면 오리지널 약값이 연동해 내려가기 때문이다.

화이자가 원하는 희망퇴직 규모는 100여명 안팎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순수 희망퇴직만으로는 이 숫자를 채우기 어려워 강제 구조조정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바이엘은 올해 중순 희망퇴직 등 형태로 제약부문 영업직원 등 100여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국내 매출 기준 1위(2011년 5061억원) 다국적제약사인 GSK도 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두 차례에 걸쳐 50여명을 희망퇴직시킨 데 이어, 최근 추가 희망퇴직을 접수할 계획이다.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 한국아스트라제네카, 한국얀센 등도 수시로 소규모 희망퇴직을 접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얀센은 수시 구조조정이 이어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달 노조를 출범시켰다.

한국BMS는 고용형태를 둘러싸고 노사간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BMS가 제약 영업직원 30여명을 외부 인력 파견업체로부터 조달해 활용하자 노조가 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으로 사측과 해당 업체를 고발한 것이다. 이 사건은 노동부 내사를 거쳐 곧 검찰로 송치될 예정이다. BMS 관계자는 “다국적제약사들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희망퇴직이나 구조조정을 통해 정규직을 내보낸 후 파견직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이 구조가 고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국내 진출 다국적제약사는 자체 연구·개발(R&D) 인력은 거의 없고 본사 약품을 들여와 파는 업무에 주력하기 때문에 영업직의 비중이 전반적으로 높다. BMS의 경우 200여명의 직원 중 절반이 영업부서다.

업계는 다국적제약사가 이 같은 상시 구조조정과 함께 국내 제약사들에 대한 인수·합병(M&A) 및 합작을 병행하며 비용 절감과 수익성 개선 전략을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알보젠이 근화제약을 인수한 데 이어, 세계 1위 제네릭 회사 테바는 14일 한독약품과 지분율 51 대 49로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최종 계약을 맺을 예정이다.

투자은행(IB)관계자는 “합작회사가 테바의 제네릭을 들여오면 한독이 자체 망을 통해 판매하는 형태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들의 반대로 미뤄지고 있지만 한·미 FTA 발효로 허가특허연계제가 시행되면 국내 중소 제약사는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허 분쟁에 면밀히 대비해 온 글로벌 제네릭사들이 국내 진출을 서두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가특허연계제는 오리지널 신약 특허권자가 특허침해 등 소송을 걸어 제네릭 출시에 제동을 쉽게 걸도록 한 것이다.

이해성/박동휘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