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스윙잉스커츠 월드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나연(25·SK텔레콤)은 올해 최고의 해를 보냈다. 처음으로 한 해 3승을 챙겼고 미국에서는 우승 상금이 가장 큰 US여자오픈(58만5000달러)과 시즌 최종전인 CME그룹 타이틀홀더스(50만달러)를 석권했다. 두 대회의 우승 상금만 108만5000달러로 일반 대회 우승 상금의 4~5배에 해당한다.

10일 귀국한 최나연은 한국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동료들이 ‘돈복’ 터졌다고 한다. US여자오픈은 메이저대회였고 타이틀홀더스는 각 대회에서 잘 친 선수들만 나온 왕중왕전이었으니까 어떤 우승보다 값졌다”고 말했다. 최근 상승세의 비결로 “코스에서 마음이 편해진 거 같다. 경험이 쌓이면서 어떤 상황이 와도 이를 극복해내는 노하우가 생겼다”며 “올해보다 내년이 더 편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최나연은 US여자오픈 마지막날 10번홀(파5)에서 트리플보기를 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도 우승컵을 안았다. 대만에서는 14, 15번홀 연속 보기를 범하고 연장 두 번째홀에서 티샷과 두 번째샷이 거푸 러프에 빠지는 위기에서 환상적인 어프로치샷으로 정상에 올랐다.

최나연은 친구인 박인비가 상금랭킹 1위에 오른 것에 대해 “사적인 자리에서 골프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서로 뒤에서 묵묵하게 격려해준다. 한두 대회에서 잘 치면 자신감이 생기고 더욱 빈틈없는 선수가 되는 것 같다”고 평했다.

세계 랭킹 1위 청야니(대만)가 슬럼프를 벗어난 것 같으냐고 묻자 “같이 밥도 먹고 술도 한잔했다. 마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괜찮아진 것 같다. 예전에는 ‘왜 안 되지?’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밀어내려고만 했는데 최근에는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 조만간 잘 될 거 같다”고 진단했다. ‘절친’ 가운데 아직 우승을 못 챙긴 김송희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송희가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치료받고 많이 좋아졌어요. 첫 우승이 쉽지 않지만 한 번 하고 나면 제 실력을 발휘할 거예요.”

박지은, 김미현 등 선배들의 은퇴와 결혼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었다.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언제쯤 은퇴하겠다는 막연한 계획은 있어요. 세리·지은 언니들이 ‘언제까지 칠 거냐’고 하면 ‘30세쯤 그만두겠다’고 해요. 그러면 ‘너도 그 나이 돼 봐. 그러면 35살로 바뀔 거다’라고 해요. 평생 바친 골프를 떠나기가 쉽지 않다고들 하더라고요.”

최나연은 내년 1월 초부터 5~6주간 쇼트게임 위주로 집중 훈련을 할 계획이다. ‘아직도 보완할 게 있느냐’고 했더니 “더 성장하고 훌륭한 선수가 되려면 당연하다. 골프는 실수 게임이기 때문에 실수가 덜 나오도록 해야 한다. 거리를 낸다거나 컨트롤, 방향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라 코스에서 최대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내년 목표는 ‘올해의 선수상’을 타는 것. 주변에서 자주 그렇게 말해서 자신도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최근 ‘롱퍼터’에 대한 규제가 발표된 데 대해서는 “주니어 때 코치의 권유로 밤에 집에서 퍼팅 연습할 때 배꼽에 대고 해봤다. 튀는 것을 좋아해 대회에서 써보려고 연습라운드 때 들고 나가봤지만 거리감이 없어서 포기했다”고 털어놓았다.

최나연은 최근 미국 올랜도에 새 집을 샀다. 원래 살던 집은 코치가 살던 곳과 가까워 팔지 않고 그대로 둬 ‘1가구 2주택자’가 됐다. 당초 박세리가 살고 있는 아일워스골프장 근처 비즈카야 타운하우스를 사려고 했으나 집들이 대부분 낡아 인근 킹스포인트 단지에 새로 지은 집을 택했다. 100만달러 정도를 주고 산 새 집은 대지 511㎡에 건평 325㎡의 단층집으로 방이 4개에 수영장이 딸려 있다.

최나연의 취미는 신발 모으기다. 집에만 100켤레 넘는 신발이 수북이 쌓여 있다. “예전에는 나이키나 아디다스의 특이하고 형광색 나는 운동화를 좋아했으나 요즘에는 나이가 들어서인지(최나연은 이렇게 말하다가 머쓱했는지 ‘20대 중반을 넘어가니까’라는 말로 정정했다) 구두처럼 차분한 신발이 마음에 들어요.”

신발뿐만이 아니다. 그의 집에는 대회 때 입은 옷들이 그대로 있다. “제가 뭘 버리지 못해요. 욕심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후원사가 옷을 주면 차곡차곡 모아둬요. 휴대폰도 예전 쓰던 것까지 모으면 10개 정도 있을 거예요. 요즘엔 사촌동생들이 컸으니 주라고 엄마가 성화죠.”

엇, 입문 2년도 안돼 언더파 치던 나를 넘어서네!


최나연 부친, 딸에 올인한 사연

최나연에 따르면 부친 최병호 씨(46)는 한때 프로골퍼를 꿈꿨다. “아빠는 30대 중반에 프로가 되겠다며 하루에 10시간 이상 연습에 몰두하셨어요. 뭐에 하나 꽂히면 집중하시는 성격이거든요. 발이 아파서 골프화를 신지 못하게 되자 맨발로 라운드를 나갈 정도였지요. 1년 만에 70타대를 치셨고 얼마 있다가 언더파도 기록했지요.”

그때쯤 최나연도 아버지를 따라 연습장을 다니다가 골프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어요. 얼마 지나 아빠가 프로테스트에 나가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떨어졌어요. 아무래도 테스트이다 보니까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신 거 같아요.”

골프에 입문한 지 2년쯤 됐을 때 최나연은 라운드에서 아버지를 이기기 시작했다. “비록 앞티에서 쳤지만 제가 아빠를 이겼어요. 당시 아빠가 제 골프에 대한 소질을 보고 ‘이제 내가 골프를 그만두고 딸을 후원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거 같아요. 그때부터 아빠가 골프를 접고 저에게 올인하셨지요.”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