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B(투자은행)에서 근무해오던 고액 연봉 유럽계 인력들이 1년 가까이 재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어요. 자본시장이 어려워지면서 증시 여건은 물론이고 잡 마켓 시장까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중국 광둥성(廣東省)의 남동부에 있는 홍콩은 아시아의 국제금융중심지다. 뉴욕 런던 도쿄와 더불어 세계 4대 금융시장으로 꼽히고 있고 아시아지역 투자자금의 전초기지다. 기업공개(IPO) 시장은 전세계 최대 규모이고 미국 달러가 자유롭게 거래되는 아시아의 유일한 곳이다. 하지만 이 곳에도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4년만에 최대위기 '아시아 금융허브'…증시 거래규모 '반토막'
"UBS 트레이더가 논다"…홍콩 금융업계도 불황과 전쟁 중
아시아 금융허브 중 한 곳인 홍콩 금융투자업계도 금융위기 이후 4년여 만에 대규모 인력 해고에 나섰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와 G2(미국, 중국)의 경기 불확실성이 불러온 결과다. 유럽계인 UBS는 1만명 이상 인력을 줄였다.

캐피탈 마켓(자본시장)에 우선 돈이 몰리지 않으면서 증시 여건도 자연스럽게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홍콩 주식시장의 하루 평균 거래대금은 약 1년 만에 1000억달러(홍콩달러 기준) 수준에서 500억달러로 절반 가량 쪼그라들었다.

브라이언 펑(Brian Fung) 홍콩 증권업협회장은 "전세계 경제성장률이 하향 추세로 돌아서면서 홍콩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평균 증시 거래대금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면서 증권업계 역시 수익성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특히 "중국기업 IPO 의존도가 높은 캐피탈 마켓 분야의 경우 더딘 경제 발전 속도로 인해 올해 상당히 부진했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향후 자본시장과 주식시장 전망도 어둡다. 펑 회장은 "미국의 경제지표가 긍정적인 수준으로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고 중국 역시 정권교체가 이뤄진 이후이기 때문에 새로운 경제정책 방향이 결정되기 전까지 불확실성이 시장을 지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대 IPO 시장도 '직격탄'…러시아 브라질 기업으로 활로 모색중
"UBS 트레이더가 논다"…홍콩 금융업계도 불황과 전쟁 중
2009년 이후 작년까지 지난 3년 간 홍콩의 IPO 시장 규모는 세계 최대 수준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 상반기까지 IPO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70% 가까이 급감했다.

이곳에서 주요 IPO 주관사는 UBS, 모간스탠리(Morgan Stanley), JP모간(JP Morgan),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BOA메릴린치, Citi, 노무라홀딩스(Nomura Holdings) 등이다. 최대 IPO 시장이 쪼그라들면서 대형 글로벌 IB들의 수익성도 급격히 악화됐다는 얘기다.

브라이언 펑 회장(사진)은 "홍콩의 IPO 시장 규모는 2009년 35조원에서 2010년 60조원에 육박했다"면서 "이후 2011년 27조원으로 다소 내리막길을 걷다가 올들어 상반기 기준으로 4조원대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IPO 딜(deal)도 2010년 93건에 달했던 것이 올 상반기 고작 31건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홍콩 현지 증권업계는 이에 따라 IPO 딜 대부분을 차지해오던 중국 기업 이외에 캐나다 러시아 브라질 등 글로벌 기업들 유치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게 펑 회장의 전언이다.

◆잇단 '대량 해고'…"사실상 장기 플랜 구조조정으로 봐야"

이렇듯 자본시장에 이은 주식시장의 불황으로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단행되자 글로벌 증권업계는 술렁이고 있다. 홍콩 현지에 진출해 있는 국내 대형 증권사 해외법인들 역시 글로벌 IB의 대량 해고 사태를 두고 다각적으로 분석중이다.

김종선 KDB대우증권 홍콩법인장은 "중국계 자산운용사들도 올들어 인력 구조조정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으며 유럽계 금융사들은 사실상 연초부터 상시 구조조정 체제를 유지해왔다"고 전했다.

이어 "이곳에서는 글로벌 금융사의 대규모 구조조정이 꼭 올해 수익성 악화 때문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장기적인 플랜 방향에 맞춘 구조조정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라고 설명했다.

HSBC CS UBS 등이 우선 장기 플랜 방향을 세우고 있는데 이는 기존의 주요 업무인 IB와 주식 및 채권 트레이딩 분야에서 한 발 벗어나 웰스매니지먼트(wealth management, 자산관리) 등 직접적인 자산운용 쪽으로 인력 배치가 집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UBS가 구조조정 인력 중 절반 이상을 IB와 트레이딩 부서에서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국내 증권업계 역시 최소 5년 이상 장기 플랜을 세워야 할 시기라는 지적이다.

김 법인장은 "국내 증권업계는 지난 3년 간 단계적으로 해외사업을 확장해 나가는 시기"라며 "해외분야는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한 뒤 안정적인 수익성으로 PI(직접자본투자)를 늘리는 등 긴 안목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KDB대우증권 홍콩법인은 미국 달러 기준으로 현재 자본금이 3억4000만달러(12월 기준)에 이르며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그리스 등 해외채권 트레이딩으로 올해만 약 10%의 수익률을 올린 곳이다. 연초엔 자본금의 절반 가량인 1억5000만달러까지 차입 규모를 늘려 운용, 홍콩 현지에서도 운용 규모 면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곳이다.

홍콩 = 한경닷컴 정현영 기자 j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