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에 유사 또는 중복 사업이 38건, 금액으로 1조113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각 부처가 사업 주도권을 뺏기지 않기 위해 ‘따놓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비를 신청한 결과다. 기획재정부의 예산편성 과정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탓도 크다.

31일 국회 예산정책처가 최근 발간한 ‘2013년도 예산안 중점 분석’ 보고서를 보면 기후변화 대응과 고졸 지원 등 모두 38건의 중독 사업에 국민들이 낸 혈세를 중복 지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기후변화 대응 사업의 경우 환경부는 ‘전기자동차 보급과 충전 인프라 구축 사업’에 내년 예산 276억원을 책정했다. 자치단체에서 전기자동차를 살 때 국가가 비용을 지원하고, 충전기도 100% 국고로 설치하는 사업이다.

지식경제부는 이와 별개로 ‘전기차 공동이용 모델 개발과 시범운영’ 사업에 정부 출연금 28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국회 등 수도권 12곳에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고 공동 운영 시범사업을 벌이는 게 골자다.

보고서는 “두 사업 예산이 따로 책정된 것은 전기차 보급 사업의 주도권을 둘러싼 부처 간 이해관계 조정의 결과”라며 “각 부처가 설치한 충전기가 호환되지 않는 등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용노동부와 교육과학기술부의 고졸 지원 사업도 대표적인 겹치기 사업으로 지목됐다. 고용부는 ‘일-현장-자격 연계형 고졸인력 양성 사업’에 21억원의 예산을 받아냈다.


예산정책처는 특성화고 교과과정 개편 등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교과부의 마이스터고 및 특성화고 지원 사업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국토해양부의 공동물류 지원 사업도 지경부의 산업물류 인프라 구축 사업과 중복돼 업무 조정이 필요한 예산으로 꼽혔다.

친환경 소비문화를 위한 지경부의 ‘탄소캐시백(녹색생활 프로그램 활성화)’ 사업, 환경부의 ‘그린카드(녹색소비제도 운영)’ 사업은 내년에 각각 10억원과 66억원의 예산을 편성한 상태다. 둘 다 친환경 제품을 구입하면 일정 금액을 포인트 형태로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무늬만 다른’ 사업으로 꼽힌다. 부처별로 홍보와 마케팅 비용도 각각 3억원 이상 따로 책정했다.

지경부와 환경부는 ‘기후변화위크’와 ‘기후변화주간’ 등 사실상 성격이 똑같은 행사에 2억5000만원과 3억원의 사업비를 경쟁적으로 편성하기도 했다.

예산정책처는 2011년 예산 결산 과정에서 ‘중복 사업을 통합해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신규 사업 5개를 제외한 33개 사업 가운데 21개는 지난해보다 예산이 늘었다.

김춘수 예산정책처 실장은 “부처 간 사업영역 다툼이 중복 사업 편성의 주원인”이라며 “통폐합을 지적하더라도 조직 이기주의에 막히는 경우 대다수인 데다 국회 상임위도 담당 부처의 예산을 깎는 데 소극적이어서 비효율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