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국가들에 그리스에 빌려준 빚을 일부 탕감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독일 주간 슈피겔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리스 등 재정위기국에 구제금융을 지원하고 있는 ECB, EU, IMF는 ‘트로이카’로 불린다.

슈피겔은 단독 입수한 트로이카의 보고서 초안을 인용,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60%가 넘는 그리스의 국가부채를 2020년까지 120%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유로존 각국에 상당 부분의 채권을 상각해주길 요청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동안 민간 채권자들이 그리스의 빚을 탕감해준 적은 있지만 국가 차원의 논의는 처음이다. 이 같은 조치가 시행되면 채권국가의 납세자들이 직접 손해를 떠안는 셈이다. 트로이카 대표단은 현재 추가 구제금융 집행 여부를 평가하기 위해 그리스에 머물고 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ECB는 그리스에 약 400억유로를 빌려줬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ECB는 법적으로 채권을 상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경우 구제금융펀드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에 출자한 채권국가들이 출자 비율에 따라 이 손실을 떠안게 된다고 텔레그래프는 설명했다.

하지만 트로이카의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최대 채권국가인 독일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그리스를 포함한 남유럽 국가들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자국 국민들에게 “위험은 전혀 없고 장기적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해왔다. 내년 9월 총선을 앞두고 있는 독일 정부로선 정치적으로 민감한 채권 상각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어 슈피겔은 트로이카가 그리스의 380억유로 긴축 달성 기한을 2014년에서 2016년으로 연장해주는 대신 추가적인 150개의 개혁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중에는 국가 재정 권한에 대한 일부 포기와 강제적 증세, 최저임금 감축, 해고 조건 완화 등 강력한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