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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요인터뷰] "경제민주화, 재벌해체 아닌 中企와 상생 모색하는 협상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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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재포럼 참석한 '협상학의 대가' 대니얼 샤피로 하버드대 교수

    협상 교육 더욱 강화해야
    정부·기업 수조달러 절감 가능…상대방과 감정적 공감대 늘려야

    지속적 남북대화 필요
    정상회담보다는 실무회담 효과적…생활·음식 등 현실적 주제 다뤄야
    “협상은 교육 가능한 기술(teachable skill)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넬슨 만델라 같은 위대한 중재자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겠죠. 하지만 꾸준히 훈련하고 또 훈련하면 협상 능력을 일정 수준까지 높이는 건 누구나 가능합니다.”

    ‘협상학의 대가’로 꼽히는 대니얼 샤피로 미국 하버드대 교수(40)는 “정부와 기업이 부담하는 비용 중 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해 새 나가는 비용이 전 세계적으로 연간 수조달러는 될 것”이라며 “정치인과 경영자들이 협상의 힘과 가능성을 인식하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에도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샤피로 교수는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을 개인·기업·국가 등의 협상 전략에 응용하고, 이를 체계화해 전파하는 교육 프로젝트를 주도해 왔다. 그의 협상 이론은 기술적인 접근 대신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최적의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협력하라는 감성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과 교육과학기술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 24일 공동 개최한 ‘글로벌 인재포럼 2012’ 개막 총회에서 ‘설득하는 인재, 세상을 바꾸는 협상’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마친 그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인재포럼에서 많은 관심을 끌었습니다.

    “한국에도 이미 협상학회가 조직돼 있을 정도로 협상학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인재포럼은 저에게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한국은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나라입니다.”

    ▷협상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 건가요.

    “사람들은 협상 전략으로 보통 두 가지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내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웬만해선 양보하지 않는 강경한 접근법입니다. 이게 전통적인 협상의 원칙이었죠. 반대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부드럽게 다가가는 유화적 접근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말하는 제3의 접근법은 ‘이해에 기반한 협상’입니다. 사람에게는 부드럽게, 문제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접근하자는 것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나요.

    “협상에서 상대방의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숨겨진 이해’를 찾는 데 집중하면 양측의 이해를 충족할 수 있는 최적의 창조적인 옵션을 찾을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배려함으로써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고요.”

    ▷협상에 서툰 사람들이 많이 하는 실수는 뭐죠.

    “협상 상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길 원하는 존재로 태어납니다. 과학자들이 ‘곧 이혼할 부부’를 판별해내는 방법이 뭔지 아세요? 서로가 갈등을 겪었던 상황에 대해 물었을 때, 거기에 답하면서도 배우자를 인정하는 멘트를 많이 하는 부부는 평생 함께 간다고 봐도 됩니다.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부부라면 헤어질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게 연구 결과로 발표되기도 했죠.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협상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협상의 결과물에는 아무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갈등만 상승하게 되죠. 아무리 긴장되고 급박한 상황이어도 상대방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협상은 진전될 수 없습니다.”

    ▷인재포럼 기조연설에서는 한국의 사례를 많이 다루셨는데요.

    “군사분계선의 포플러나무 한 그루를 놓고 전쟁 위기가 고조됐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을 들어 협상의 중요성을 설명했습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논란을 빚기도 했는데, 대북전단 살포용 풍선을 날려보내는 것은 남북한 간의 감정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협상을 해놓고도 번번이 깨는 북한과도 계속 협상해야 합니까.

    “한국 입장에서 협상 외에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강경책을 쓰면 감정만 격앙되고 그에 따른 비용 지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나이 어린 지도자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하여금 자신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기보다, 북한을 국제사회로 끌어내 그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논의하는 게 현명합니다.“

    ▷북한은 협상 테이블에 잘 나오려 하지 않는데요.

    “남북한 같은 대치상황에서 정상들이 직접 나서는 건 좋은 전략이 아닙니다. 지도자들은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하고, 자칫 잘못하면 후폭풍이 너무 크기 때문이죠. 저는 지도자가 아닌 두 번째 레벨이라 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양쪽에서 최소 1~2명, 아무리 많아도 4~5명 정도만 모여 언론에 노출되지 않는 비공식 접촉을 자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외교 문제가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생활, 음식, 건강 같은 현실적인 주제에 대해 대화하는 겁니다.”

    ▷최근 한국에선 경제민주화를 놓고 정치권과 재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 ‘톱다운’ 방식으로 내려오는 정책으로는 그런 갈등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당사자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핵심 의제별로 3~4개의 소위원회를 만들고, 소수의 대표들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 직접 대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소기업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대기업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매출 신장, 기술력 향상, 해외 진출 등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에서 대기업의 도움을 받고 상생할 수 있는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브레인스토밍하는 것이 옳은 해법이라 봅니다.”

    ▷삼성과 애플 법적 분쟁도 협상으로 풀 수 있을까요.

    “소송의 장점은 결과가 딱 떨어지게 나온다는 것이죠. 하지만 결과를 당사자들의 의지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는 게 크나큰 단점입니다. 더구나 삼성과 애플처럼 거대 기업 같은 경우에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쓰게 되지 않습니까. 두 회사의 대표 4~5명이 만나 협상 테이블에 앉아보는 건 비용도 거의 들지 않는 데 더 시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겠냐는 생각입니다. 돈이 걸려있는 기업 간의 분쟁이 반드시 소송으로만 해결이 가능한 건 아닙니다. 미국에서 마케팅 전략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최고경영자(CEO) 간의 팔씨름’으로 재치 있게 담판을 본 사우스웨스트항공과 스티븐스항공의 사례는 경영학에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지요. 어떤 첨예한 분쟁이라도 양쪽이 단 5분만이라도 서로의 숨겨진 이해가 무엇인지 생각해본다면 최적의 대안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협상 교육은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 게 좋습니까.

    “회사 전 직원을 모아놓고 강사를 초빙해서 두어시간 수업을 듣는 건 조금 도움을 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하는 방식은 우선 CEO를 포함한 고위 경영진으로 소그룹을 구성해 협상 기술을 가르칩니다. 윗선에서부터 협상이 ‘적군 대 아군’의 대립 게임이 아니라 ‘문제를 공유하고 양쪽이 마주앉는 활동’이라고 인식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이들이 부하 직원들과 다시 그룹을 만들어 경영진들이 내용을 전달하고 전체가 공유하는 겁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진행해 실무에서 협상 기술을 반복 실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조직 차원의 단결과 협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협상 프로그램을 교육하고 있는데 향후 계획은 무엇입니까.

    “저는 좀 더 협상을 잘 하고, 입장 차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참여해 왔어요. 세계 정치 지도자와 기업 경영자들이 우리가 개발한 협상 기술을 더 많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런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정부와 국회 간의 대화에서 많은 진전을 이뤄냈어요. 개인적으로 한국과 북한에서도 소수의 팀을 이뤄 비공개로 하버드대에 오셔서 협상의 기술을 며칠만 교육받는다면 분명 큰 효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달 국내에서 《빌딩 어그리먼트(Building Agreement)》라는 새 책을 출간한다는 데 어떤 내용인가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수록 실마리는 상대방의 숨은 감정에 달려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책입니다. 이론적으로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방법으로 협상을 진행하는 게 최고겠지만 현실은 다를 수 있어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협상법 위에서 감정적인 공감대를 끌어내 성공률을 높이는 방법을 다뤘습니다.”

    ■ 대니얼 샤피로 교수는

    심리학을 협상전략에 응용…갈등조정프로그램 전세계 교육

    대니얼 샤피로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및 의과대 정신건강학부 교수는 존스홉킨스대에서 심리학 학사를 받고 매사추세츠주립대 엠허스트캠퍼스에서 임상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터프츠대 플리처스쿨과 MIT 슬론스쿨 교수를 지냈으며 2008년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한 ‘세계의 젊은 리더’에 꼽히기도 했다. 현재 하버드국제협상프로그램(HINP) 책임자를 맡고 있으며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정부 관료, 협상 전문가, 법률가, 심리학자 등을 대상으로 협상학을 교육하고 있다. 그가 소로스재단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갈등조정프로그램은 30여개국에서 100만명 이상이 수강했다. 대표 저서로는 로저 피셔 하버드대 로스쿨 명예교수와 함께 쓴《감성으로 설득하라(Beyond Reason)》가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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