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과 날줄] 그들은 핑크빛 희망을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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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축제서 만난 유방암환우회
절망딛고 히말라야등반 책 펴내…성찰 통해 이웃 보듬는 감동 줘"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
절망딛고 히말라야등반 책 펴내…성찰 통해 이웃 보듬는 감동 줘"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
깊은 가을이다. 산으로 들로, 또 자연과 함께하는 이런저런 문화 전시장으로 자동차가 아닌 두 발로 걸어가 숲과 나무들과 함께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 그래서 지역마다 자기 지역의 길 특성을 내세워 걷기 축제를 이끈다.
얼마 전 내 고향 강릉에서도 고대의 문화올림픽과 같은 ‘세계무형문화축전’ 기간에 대관령과 동해 바닷가를 걷는 강릉바우길 걷기 축제를 했다. 강릉 하면 사람들은 경포대와 푸른 동해를 떠올리고 경포호수와 그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는 오죽헌과 선교장, 난설헌 허초희와 교산 허균 남매가 자란 초당마을을 떠올린다.
그런 오랜 문화도시에서 ‘세계무형문화축전’이 열렸다. 정열적이고 화려한 ‘아르헨티나의 탱고’, 우리 농악과 가락이 유사한 ‘필리핀 후드후드송’ ‘스페인의 토르네 한츠’, 말·양떼와 함께 목지를 찾아 떠도는 유목인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몽골 우르틴드’, 거기에 난전을 가득 채운 20여개 참가국의 먹거리 축제가 함께 벌어졌다.
어쩌다 한번 갖는 대회가 아니라 세계문화올림픽답게 앞으로 각 나라가 돌아가며 이 대회를 유치하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한다. 우리나라 천년축제인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어 이렇게 세계적인 민속문화공연을 다른 나라로 가지 않고도 한 자리에서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축제기간 동안 산과 들에서는 어디에서 출발하든 공연장까지 걸어오는 바우길 걷기 축제가 열렸다. 우리가 잠시 자동차를 버리고 자신의 두 다리만을 이용해 길을 걷는 것은 단지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산길이든 들길이든 우리가 길을 걷는 것은 다리힘과 몸의 힘만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걸음이 시작되면 생각이 시작되고, 걸음이 멈추면 생각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의 생각이 정리된다. 그래서 우리가 길을 걷는 것을 자연 속의 사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주 길을 걷는 것은 자주 자신에 대해서 사색하는 것이고, 오래 길을 걷는 것은 그 시간만큼 자연과 세상, 나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그런 바우길 걷기축제 동안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분들은 자신을 내게 ‘한국유방암환우회 합창단’이라고 소개했다. 함께 산길과 들길을 걷고 길 위에서 노래도 부르며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단체에도 찾아가 노래와 노역봉사도 하고 또 암을 이겨낸 기나긴 과정에 대해 강연도 한다고 했다.
그런 그 분들이 내게 책을 한 권 주었다. 나는 직업적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어서 길 위에서 전해받는 책에 대해 사실 큰 감동을 잘 받지 않는다. 대충 훑어보고 책꽂이에 꽂아놓을 때가 많다. 그런데 유방암환우회 합창단이 내게 준 책은 좀 달랐다. 나는 그것이 다른 책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그것을 받은 길 위에서가 아니라 집에 와서 알았다.
유방암을 이긴 아홉 여인의 이야기다. 그것도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세계의 명산 히말라야를 등반한 이야기다. 보통 이런 경우 등반은 여러 명이 단체로 해도 책은 그 중 한 사람이 대표 집필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그것마저 아예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는 일을 맡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쓴《핑크 히말라야》라는 책은 저마다 긴 시간 힘겹게 암과 싸워 이겨낸 다음 더 큰 세상을 품고 오기 위해 히말라야로 간 여인 열아홉 명 중 아홉 명이나 참가해 쓴 책이다. 아니, 한 분이 더 이 책 집필에 참가했다. 이들의 등반 과정 중에 혹시 발생할지 모를 많은 일에 대비해 이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간 어느 대학병원 암병원장이 긴 여행에도 동행하고 책 집필에도 함께 참여했다. 암을 이겨내고 마침내 히말라야로 간 아홉 여인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모양의 산처럼 오밀조밀하면서도 그것이 또 하나의 큰 산을 이룬다.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은 피아니스트 서혜경 님은 이 책이 “인생에서 가장 깊고 무거운 암이라는 절망의 크레바스를 건너 핑크빛 희망으로 물들여가는 보통 아줌마들의 감동과 희망의 등반기요 투병기”라고 했다. 내게도 이 책은 인생의 큰 시련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내 가슴에서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읽혔다.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
얼마 전 내 고향 강릉에서도 고대의 문화올림픽과 같은 ‘세계무형문화축전’ 기간에 대관령과 동해 바닷가를 걷는 강릉바우길 걷기 축제를 했다. 강릉 하면 사람들은 경포대와 푸른 동해를 떠올리고 경포호수와 그 호숫가에 자리잡고 있는 오죽헌과 선교장, 난설헌 허초희와 교산 허균 남매가 자란 초당마을을 떠올린다.
그런 오랜 문화도시에서 ‘세계무형문화축전’이 열렸다. 정열적이고 화려한 ‘아르헨티나의 탱고’, 우리 농악과 가락이 유사한 ‘필리핀 후드후드송’ ‘스페인의 토르네 한츠’, 말·양떼와 함께 목지를 찾아 떠도는 유목인들의 삶과 애환을 담은 ‘몽골 우르틴드’, 거기에 난전을 가득 채운 20여개 참가국의 먹거리 축제가 함께 벌어졌다.
어쩌다 한번 갖는 대회가 아니라 세계문화올림픽답게 앞으로 각 나라가 돌아가며 이 대회를 유치하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한다. 우리나라 천년축제인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어 이렇게 세계적인 민속문화공연을 다른 나라로 가지 않고도 한 자리에서 다 둘러볼 수 있었다.
이 축제기간 동안 산과 들에서는 어디에서 출발하든 공연장까지 걸어오는 바우길 걷기 축제가 열렸다. 우리가 잠시 자동차를 버리고 자신의 두 다리만을 이용해 길을 걷는 것은 단지 건강을 위해서만이 아니다. 산길이든 들길이든 우리가 길을 걷는 것은 다리힘과 몸의 힘만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걸음이 시작되면 생각이 시작되고, 걸음이 멈추면 생각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의 생각이 정리된다. 그래서 우리가 길을 걷는 것을 자연 속의 사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자주 길을 걷는 것은 자주 자신에 대해서 사색하는 것이고, 오래 길을 걷는 것은 그 시간만큼 자연과 세상, 나에 대해 사색하는 것이다.
그런 바우길 걷기축제 동안 아주 특별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 분들은 자신을 내게 ‘한국유방암환우회 합창단’이라고 소개했다. 함께 산길과 들길을 걷고 길 위에서 노래도 부르며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단체에도 찾아가 노래와 노역봉사도 하고 또 암을 이겨낸 기나긴 과정에 대해 강연도 한다고 했다.
그런 그 분들이 내게 책을 한 권 주었다. 나는 직업적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어서 길 위에서 전해받는 책에 대해 사실 큰 감동을 잘 받지 않는다. 대충 훑어보고 책꽂이에 꽂아놓을 때가 많다. 그런데 유방암환우회 합창단이 내게 준 책은 좀 달랐다. 나는 그것이 다른 책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그것을 받은 길 위에서가 아니라 집에 와서 알았다.
유방암을 이긴 아홉 여인의 이야기다. 그것도 그냥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이 세계의 명산 히말라야를 등반한 이야기다. 보통 이런 경우 등반은 여러 명이 단체로 해도 책은 그 중 한 사람이 대표 집필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그것마저 아예 다른 사람에게 글을 쓰는 일을 맡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쓴《핑크 히말라야》라는 책은 저마다 긴 시간 힘겹게 암과 싸워 이겨낸 다음 더 큰 세상을 품고 오기 위해 히말라야로 간 여인 열아홉 명 중 아홉 명이나 참가해 쓴 책이다. 아니, 한 분이 더 이 책 집필에 참가했다. 이들의 등반 과정 중에 혹시 발생할지 모를 많은 일에 대비해 이들과 함께 히말라야로 간 어느 대학병원 암병원장이 긴 여행에도 동행하고 책 집필에도 함께 참여했다. 암을 이겨내고 마침내 히말라야로 간 아홉 여인의 이야기가 서로 다른 모양의 산처럼 오밀조밀하면서도 그것이 또 하나의 큰 산을 이룬다.
이 책을 나보다 먼저 읽은 피아니스트 서혜경 님은 이 책이 “인생에서 가장 깊고 무거운 암이라는 절망의 크레바스를 건너 핑크빛 희망으로 물들여가는 보통 아줌마들의 감동과 희망의 등반기요 투병기”라고 했다. 내게도 이 책은 인생의 큰 시련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고 내 가슴에서 다른 사람의 가슴으로 나아가는 이야기로 읽혔다.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