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22일 오후 1시6분

경기 불황 장기화와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흐름에 움츠러든 기업들이 투자를 유보하는 대신 자사주 매입을 늘리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올해 자사주 매입 규모만 약 1조원(매입 예정액 포함)에 이른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기업들이 여윳돈으로 주가 부양과 지배구조 변화 등에 다목적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자사주를 사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한국거래소와 SK증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의 코스피200지수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들은 2010년부터 지난 8일까지 총 5조7836억원어치 자사주를 사들였다. 2009년 1조396억원이던 이들 기업의 자사주 매입 금액은 2010년 1조9581억원으로 늘어난 뒤 지난해에는 2조4642억원까지 불어났다. 올 들어 지난 8일까지는 1조3613억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여 2009년 규모를 이미 넘어섰다.

그룹별로는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자사주 매입이 활발하다. 삼성생명(2869억원) 삼성화재(3143억원) 삼성카드(2495억원) 제일기획(753억원) 등 4개 계열사가 올 들어 매입했거나 연말까지 매입하겠다고 밝힌 자사주 규모는 총 9261억원에 이른다.

SK그룹 지주회사인 SKC&C도 2009년, 2010년에 자사주를 사들인데 이어 올해도 2103억원어치를 추가로 매입했다. STX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주)STX도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자사주(70억원)를 매입했다.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있는 유한양행(208억원) 동아제약(390억원) 등도 자사주를 대거 사들였다.

자사주 매입과 대조적으로 기업들의 투자는 잔뜩 움츠러들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의 설비투자 증가율(통계청 설비투자 추계 지수 기준)은 2010년 24.2%를 기록한 뒤 지난해에는 0.7%로 크게 떨어졌다. 올 상반기에도 1.6%에 머물렀다.

이동섭 SK증권 기업분석팀장은 “경기 불황 장기화 등으로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한 기업들이 순환출자 해소 등에 대비해 내부 유보금을 자사주로 전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는 “과거엔 기업들이 자사주를 매입하면 취득 목적대로만 사용해야 했는데, 지난 4월 개정 상법 시행에 따라 이사회 결의만 있으면 자사주를 주가 부양, 경영권 방어 등 다양한 용도로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것도 자사주 매입을 부추기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김동윤/박동휘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