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22일 오전 5시57분

투자은행(IB) 직원은 뛰어난 ‘호객꾼’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채권이나 주식, 기업이 있어도 투자자를 끌어모으지 못하면 제값을 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회사채 수요예측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어느 증권사가 채권시장에서 이런 ‘호객 행위’를 잘하는지 비교해 볼 수 있게 됐다. 회사채 발행 금액에 비해 얼마나 많은 수요자(기관투자가)를 모았는지 공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회사채 수요예측제도란 회사채 발행을 위해 발행사와 주관사가 공모 희망금리 구간을 제시하고 기관투자가들의 희망금리와 희망물량을 토대로 시장 수요를 파악해 최종 발행 조건을 결정하는 것이다.

○한국·우리증권 ‘단독 거래’ 휩쓸어

우리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회사채 발행을 위한 대표주관을 잇따라 따냈다. 회사채 발행시장에서 수요 미달 사태가 속출하자 일부 기업들이 기존 주관사와 결별하고 채권 판매 역량이 뛰어난 증권사 문을 두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 8월20일 ‘수요예측 모범규준’ 개정안 시행 이후 이달 17일까지 두 달간 일반회사채 단독 대표주관 실적을 집계한 결과 우리투자증권은 모두 13건(발행회사가 같아도 만기가 다른 경우 포함), 1조2500억원어치 거래를 성사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의 수요예측 참여금액은 2조900억원에 달한다. 1.67 대 1의 흥행성적을 거둔 셈이다.

한국투자증권도 10건, 1조4600억원 규모 회사채 발행을 단독 대표로 주관했다. 회사채 모집금액보다 많은 2조2700억원(1.55 대 1)의 수요를 끌어모았다.

두 회사의 이런 성적은 최근 수년간 IB 인력 유출을 최소화하고 투자자 네트워크를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지난해 국내 최초로 ‘발행사와 투자자 간 이해상충’을 중재할 수 있는 채권신디케이션팀을 신설했다. 한국투자증권은 베테랑 임원들을 중심으로 발행사 접촉에서 채권 판매까지 긴밀한 협조 아래 진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췄다.

이들 두 회사 외에 같은 기간 4건 이상의 회사채를 단독 대표주관한 증권사는 미래에셋(8), 동양(5), KB투자증권(4) 3곳에 불과했다. 단순 경쟁률은 0.93, 0.62, 0.61 대 1로 모두 모집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기업들, 금리보다 이미지 신경 써”

회사채 발행시장 참여자들은 수요예측 제도가 자리잡아 가면서 판매 네트워크가 강한 증권사에 수수료를 지급하려는 기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까다로운 삼성도 개정안 시행 이후로는 우리투자와 한국투자증권과만 거래했다”며 “미달 물량은 증권사가 떠안지만 회사채 인기가 없다는 등의 잡음이 생기는 게 싫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