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시] 가을 - 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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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가을
마종기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
옷깃을 여미면서 유난히 끈끈하고 무겁던 지난 여름의 공기를 떠올려봅니다. 쉽지 않습니다. 분명 숨이 턱턱 막히던 더위가 있었고 그로 인한 짜증과 그때의 삶이 있었는데. 지금의 서늘한 바람 앞에서는 여름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습니다. 겨우 두 달쯤 지났을 텐데, 덧없습니다.
지나간 사랑도 미움도 그렇게 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걸까요. 언제 그랬는지도 모른 채. ‘무게대로 엉겨서’ 땅으로 향하는 열매처럼, 떨어지고 자라기를 반복하는 게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이른가요. 시월이 가고 십일월이 오면 올해도 이미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은 두 달, 웃으며 맞으려 합니다. ‘나름대로 익어서’ 지나가는 세월이라면 좋겠습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마종기
가벼워진다
바람이 가벼워진다
몸이 가벼워진다
이곳에
열매들이 무겁게 무겁게
제 무게대로 엉겨서 땅에 떨어진다
오, 이와도 같이
사랑도, 미움도, 인생도, 제 나름대로 익어서
어디로인지 사라져간다
옷깃을 여미면서 유난히 끈끈하고 무겁던 지난 여름의 공기를 떠올려봅니다. 쉽지 않습니다. 분명 숨이 턱턱 막히던 더위가 있었고 그로 인한 짜증과 그때의 삶이 있었는데. 지금의 서늘한 바람 앞에서는 여름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습니다. 겨우 두 달쯤 지났을 텐데, 덧없습니다.
지나간 사랑도 미움도 그렇게 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걸까요. 언제 그랬는지도 모른 채. ‘무게대로 엉겨서’ 땅으로 향하는 열매처럼, 떨어지고 자라기를 반복하는 게 삶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소 이른가요. 시월이 가고 십일월이 오면 올해도 이미 남아 있지 않습니다. 남은 두 달, 웃으며 맞으려 합니다. ‘나름대로 익어서’ 지나가는 세월이라면 좋겠습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