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 브레머 "글로벌 리더십 없는 G-제로 한국이 중심축 국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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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미국과의 동맹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지만 한국은 특정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관계를 다변화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세계 최대 정치리스크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43·사진)은 17일 “한국은 균형잡힌 국제 관계를 통해 세계의 중심축 국가(pivot state)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제사회의 리더십이 사라졌다는 뜻의 ‘G-제로’라는 신조어를 만든 그는 “G제로 시대에는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유연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중심축 국가가 번영한다”고 주장해왔다. 브레머 회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는 당분간 저성장과 사회불안으로 변동성이 큰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중일 간의 영토 갈등이 심화되면서 동북아의 상황이 복잡해졌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나은 편이다. 한국은 아직 선택권이 많은데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되어가는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일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미국 뿐이다. 반면 한국은 미국 뿐 아니라 중국과도 강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에 관문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한국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지만 아직 불안한 나라다. 너무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은 아시아 내에서 일본을 최우선 동맹국으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그렇다. 일본은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과 달리 미국과 같은 가치(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고 선진화된 경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그렇지만 한국은 선택권이 많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이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중심축 국가(pivot state)’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만약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와도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유로존이 붕괴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한다면 그 시점은 유럽이 지금보다 더 통합되고 그리스가 빠져나가도 문제가 없는 때가 될 것이다. 그 전에는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의 탈퇴를 허용할 리 없다. 유럽의 진짜 위기 요인은 유로존 붕괴가 아니라 성장 정체와 경쟁력 상실이다. 지난 5년간 성장이 멈췄고 인플레이션율(물가상승률)은 11%를 웃돈다.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긴축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리스 정부가 성난 시민들에 의해 전복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발 글로벌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도 성장이 둔화됐고 중국마저 경착륙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이 없는 ‘G-제로 시대’에 세계 경제는 더 취약하고, 더 변동성이 크고, 더 느리게 성장할 것이다. 만약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이 발생한다면 그 후폭풍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데.
“미국인들이 개입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싼 전쟁을 치뤘다. 그런데도 여전히 반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는 재건하지 않으면서 왜 이라크 재건을 돕느냐는 게 미국인들의 정서다.”
▶미국이 없는 중동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셰일가스와 같은 비전통적인 원유와 가스의 생산이 늘어나고 있다. 대체 에너지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 만큼 중동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중동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폭력과 소요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는 역시 세계 경제의 위험요인이지만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 것이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보호무역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나는 보호무역보다 자유무역협정(FTA)의 ‘파편화’를 더 걱정하고 있다. 다자주의보다 양자주의나 지역주의가 더 보편화되고 있다. 이는 무역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제품이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물가 상승 등 세계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 등 선진국과 다른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글로벌 무역이 직면한 큰 도전과제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
세계 최대 정치리스크 컨설팅 회사인 유라시아그룹의 이안 브레머 회장(43·사진)은 17일 “한국은 균형잡힌 국제 관계를 통해 세계의 중심축 국가(pivot state)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국제사회의 리더십이 사라졌다는 뜻의 ‘G-제로’라는 신조어를 만든 그는 “G제로 시대에는 어느 한 편에 서지 않고 유연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중심축 국가가 번영한다”고 주장해왔다. 브레머 회장은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는 당분간 저성장과 사회불안으로 변동성이 큰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중일 간의 영토 갈등이 심화되면서 동북아의 상황이 복잡해졌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나은 편이다. 한국은 아직 선택권이 많은데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 되어가는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다. 일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지는 미국 뿐이다. 반면 한국은 미국 뿐 아니라 중국과도 강한 경제적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외국 기업들의 중국 투자에 관문이 되어가고 있다. 다만 한국에 조언하고 싶은 것은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지만 아직 불안한 나라다. 너무 의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미국은 아시아 내에서 일본을 최우선 동맹국으로 삼아야 한다고 썼다.
“그렇다. 일본은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과 달리 미국과 같은 가치(민주주의, 시장경제)를 공유하고 있고 선진화된 경제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그렇지만 한국은 선택권이 많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한국이 미국에만 의존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어느 편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가장 좋은 것은 그런 선택을 할 필요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른바 ‘중심축 국가(pivot state)’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만약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점이 와도 남이 아닌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유로존이 붕괴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만약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한다면 그 시점은 유럽이 지금보다 더 통합되고 그리스가 빠져나가도 문제가 없는 때가 될 것이다. 그 전에는 독일과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리스의 탈퇴를 허용할 리 없다. 유럽의 진짜 위기 요인은 유로존 붕괴가 아니라 성장 정체와 경쟁력 상실이다. 지난 5년간 성장이 멈췄고 인플레이션율(물가상승률)은 11%를 웃돈다.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긴축도 실시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와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다. 장기적으로 그리스 정부가 성난 시민들에 의해 전복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발 글로벌 경기침체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 미국도 성장이 둔화됐고 중국마저 경착륙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글로벌 리더십이 없는 ‘G-제로 시대’에 세계 경제는 더 취약하고, 더 변동성이 크고, 더 느리게 성장할 것이다. 만약 2008년 금융위기와 같은 충격이 발생한다면 그 후폭풍은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중동에서 미국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데.
“미국인들이 개입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라크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싼 전쟁을 치뤘다. 그런데도 여전히 반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폐허가 된 뉴올리언스는 재건하지 않으면서 왜 이라크 재건을 돕느냐는 게 미국인들의 정서다.”
▶미국이 없는 중동은 세계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셰일가스와 같은 비전통적인 원유와 가스의 생산이 늘어나고 있다. 대체 에너지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 만큼 중동의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아무도 중동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 폭력과 소요사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 이는 역시 세계 경제의 위험요인이지만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줄어들 것이다.”
▶경제 위기가 지속되면서 보호무역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나는 보호무역보다 자유무역협정(FTA)의 ‘파편화’를 더 걱정하고 있다. 다자주의보다 양자주의나 지역주의가 더 보편화되고 있다. 이는 무역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제품이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전달되지 않으면 물가 상승 등 세계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 등 선진국과 다른 경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글로벌 무역이 직면한 큰 도전과제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