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미지아니의 '파격 실험'…한국서만 시계값 확 내렸다
스위스 명품시계 브랜드 ‘파르미지아니’가 최근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주요 제품 가격을 10% 이상 내렸다. 까르띠에 등 매년 연례행사처럼 가격을 올리고 있는 대다수 시계 브랜드와는 달리 가격 경쟁력을 높여 ‘뜨는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파르미지아니는 이달 초 주요 제품의 국내 판매가를 최소 280만원에서 최대 1150만원까지 인하했다. 간판 모델 중 하나인 클래식 시계 ‘톤다 1950’은 2460만원에서 2180만원으로 11.4% 내렸다. 스포츠 컬렉션인 ‘칼파그래프’의 로즈골드 모델(사진)은 4350만원에서 3860만원, 화이트골드 모델은 4580만원에서 4050만원으로 각각 11.3%와 11.6% 떨어졌다. 또 ‘펄싱’ 컬렉션의 스틸 브레이슬릿 모델은 3020만원에서 2680만원, 로즈골드 브레이슬릿 모델은 1억100만원에서 8950만원으로 인하하는 등 일부 컴플리케이션 워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계 가격이 내렸다. 이현숙 파르미지아니 브랜드 매니저는 “성장속도가 빠른 한국 시장에서 소비자 저변을 넓히기 위해 스위스 본사를 장기간 설득한 결과”라며 “한국 가격과 (환율을 고려한) 스위스 현지 판매 가격을 동일하게 맞춰 동급 브랜드 대비 경쟁력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현존하는 3대 시계 명장으로 꼽히는 미셸 파르미지아니가 1975년 설립한 파르미지아니는 시계의 핵심인 무브먼트(동력장치)를 비롯한 모든 부품을 자체 생산하는 몇 안 되는 브랜드다. 100년이 넘은 시계업체가 수두룩한 스위스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특급’으로 인정받고 있다.

파르미지아니의 '파격 실험'…한국서만 시계값 확 내렸다
시계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고급 브랜드가 특정 국가의 가격만 대폭 내리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란 평가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가격을 매년 한두 차례씩 ‘기습 인상’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 한국 소비자들이 많이 구매하는 3대 명품시계인 까르띠에와 롤렉스, 오메가 등은 올해도 가격을 평균 5% 안팎 올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의 명품시계 브랜드들은 국내 판매가격을 스위스 현지보다 높게 책정하고 있다”며 “거대 시계그룹인 리치몬트나 스와치 계열 브랜드와는 달리 파르미지아니는 독립 브랜드여서 가격 정책을 국가별로 좀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다른 명품 브랜드에 비해 한국 시장에 뒤늦게 진출한 파르미지아니는 가격 인하를 계기로 국내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시계 수리를 맡기고 기다리는 동안 자사의 다른 시계를 무료로 빌려주는 렌털 서비스도 최근 도입했다. 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과 서울 논현동 노블워치에서 운영 중인 단독 매장을 매년 1~2곳씩 늘릴 예정이다.

스위스시계산업연합회 집계에 따르면 올 1~8월 한국으로 수출한 시계 총액은 3억670만스위스프랑(약 36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늘었다. 한국 남성들의 고급시계 수요가 늘어남과 동시에 중국인 ‘큰손’ 관광객의 원정 쇼핑에 힘입은 것이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