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주력 회사인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연내 10억달러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현대상선과 서부발전도 각각 3억~4억달러, 1억달러 안팎의 영구채 발행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최근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영구채 발행에 성공하면서 다른 기업들의 참여도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영구채 발행이 기업의 자금조달 및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 영구채 발행 잇따라

산업은행 관계자는 11일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각각 5억달러, 4억~5억달러 규모의 영구채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며 “연내 발행을 목표로 발행 조건과 시기, 수요예측 등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산은은 금융자문 및 발행 주관업무를 맡고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추진 중인 영구채 발행 조건은 기존 두산인프라코어와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기를 30년으로 잡고 기한을 임의로 연장하는 식이다.

예를 들어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5년 후 원금을 상환하지 않길 원하면 연 4~5%의 금리가 추가되고 7년 또는 10년 후 다시 연 2~3%의 가산금리가 더해지는 스텝업(step up) 방식이 적용될 전망이다. 다만 영구채를 발행한 기업들이 만기를 미루면 금리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미리 정해진 특정시점에 대부분 환매에 나선다.

투자자들 입장에선 발행 5년 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이 영구채를 환매하지 않으면 풋옵션(매입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채권 매각을 원하면 산은을 비롯한 2~3개 은행이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채권 매입을 책임지게 된다. 기업 입장에선 은행의 신용 보강으로 채권 발행 금리를 대폭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새 재무구조개선 수단되나

관건은 나중에 채권 매입을 책임질 은행을 찾는 일이다. 산은 관계자는 “영구채가 국내 금융권에선 아직 생소한 편이라서 은행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게 핵심”이라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들과 함께 참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산은과 기업들은 올 연말께 국제 금융시장이 안정되면 채권 발행 금리가 더 낮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이달 초 발행한 영구채 금리는 미국 국채 5년물에 265bp(1bp=0.01% 포인트)를 더한 수준인 3.328%다.

재계는 영구채 발행이 새로운 재무구조 개선 카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영구채는 만기가 없는 신종자본증권으로 국제회계기준(IFRS)상 자기자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때문에 회사채 발행과 달리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유상증자와 달리 기존 주주의 지분 희석 없이 자본 확충도 가능하다. 재계 관계자는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었거나 유동성 안정화가 필요한 기업 입장에선 영구채 발행이 효과적일 것”이라며 “선제적으로 자본을 확충해 시장우려를 불식시키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영구채의 재무구조 개선효과는 제한적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만기 5년 후 중도상환하지 않을 때는 스텝업 조항에 의해 금리가 높게 조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평가는 두산인프라코어의 영구채가 기업재무제표에는 자본으로 잡히겠지만 본질적인 한계를 감안해 신용평가시에는 전액 부채로 반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

■ 영구채

perpetual bond. 특정 시점 후에 조기 상환하거나 만기를 연장할 수 있는 채권. 만기를 연장할 경우엔 투자자에게 이자만 계속 내면 된다. 채권과 주식의 중간 성격을 띠고 있어 하이브리드채권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