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호 아이푸드테라피 사장(39)은 올해 그 어느 해보다 따뜻한 추석을 맞는다. 비록 경기도 남양주시 원룸에서 다섯 식구가 올망졸망 붙어사는 신세지만 신용불량자 딱지를 떼어냈고 ‘미래의 이병철 정주영’이 되겠다고 창업의 깃발을 높이 올렸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가족과 생이별하는 아픔까지 겪은 그다.

하지만 올 추석은 당당하다. 7000만원의 창업자금을 지원받으며 야채와 곡물을 이용한 어린이용 소스를 생산하는 기업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이번 추석에는 로고와 캐릭터를 만들고 집 근처 협력업체를 찾아 시제품 생산과정을 점검할 생각이다. 캐릭터는 두 아들이 밝게 웃는 모습으로 정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931 아이푸드테라피 CEO 최철호.’ 최 사장의 명함은 평범하다. 하지만 이 명함 속에는 그가 겪은 험난한 인생 역정이 녹아있다. 1997년 외환위기. 모든 사람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에겐 딴나라 얘기였다. 강릉 영동대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한 그는 한식 양식 일식 제과 제빵을 두루 배웠고 외환위기 당시에는 화재보험 대리점 사장과 음식점 사장을 겸했다. ‘투잡’을 가졌다. 아내는 은행원이었다. 과천 아파트에 살던 최씨에게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동업을 하던 안산의 음식점이 망했다는 것이다.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라섰다. 최 사장은 “동업자를 믿고 모든 것을 맡겨둔 것이 화근이 됐다”고 말했다.

화불단행인가. 이때부터 어려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지인의 권유로 어떤 사업에 투자한 것도 물거품이 됐다. 아내는 빚을 갚기 위해 명예퇴직했다. 과천 아파트 전세금을 빼서 경기도 안산의 원룸으로 옮겼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5만원짜리다. 포장마차를 하기 위해서다. 중심상권은 아니지만 주변에 유흥업소들이 있어 그런대로 되겠거니 생각하고 실내포장마차를 열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둘째를 임신한 아내는 입덧을 하면서도 쌀이 떨어져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다.

거처를 고향인 태백으로 옮겼다. 지인의 도움으로 기업체의 작은 사택에서 더부살이했다. 최 사장 혼자 서울로 올라와 주유소 요양원 등지를 전전하며 이산가족으로 지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직장은 없었다. 셋째 아이를 출산하고 친구의 도움을 받아 남양주 원룸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뒤 일용직 건설노동자, 구리농수산물시장 야간경매원을 거쳐 인천 연안부두 전복가게의 배송원 등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좌절과 인간적인 모멸감을 맛봤다.

이렇게 살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사업을 시작해 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신용불량 상태를 끝내야 했다. 낮에는 건설현장 일용직 근로자, 밤에는 식당 주방에서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는 “2011년 2월 마침내 신용회복위원회에 일시불로 돈을 내고 신용을 회복한 뒤 아내와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회고했다.

그러던 중 경기도 안산 청년창업사관학교 소식을 접하게 됐고 문을 두드렸다. 금년 3월 입교한 최 사장은 사관학교 내 3평짜리 공간에서 6월19일 회사를 설립했다. 비록 1인 창업이지만 번듯한 사장 명함을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그는 “어린 세 아들(3,7,12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안산=김낙훈 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