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사진)은 27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경총포럼’ 인사말을 하기 앞서 대형 스크린에 화면 하나를 띄웠다. “이걸 좀 보세요.”

‘주요 상임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채택 거론 기업(인)’이라는 제목의 화면에는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에 불러세울 최고경영자(CEO)들의 명단이 떴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비롯해 삼성, 현대자동차, SK, 롯데 등 대기업과 CEO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 회장은 “경제민주화라는 명분 속에서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고 덩달아 기업인 증인 소환 요구도 늘고 있다”며 “4개 상임위에서만 61명의 기업인을 증인으로 채택했다”고 말했다.

특히 여소야대 환경노동위원회는 이 회장을 비롯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몽구 현대차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등 모두 51명의 기업인 소환을 신청, 19명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이 회장은 “국회 환노위가 개별 기업 노사관계에 개입하려는 모습”이라며 “이런 기조는 국정감사는 물론 19대 국회 내내 계속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작심한 듯 정치권에 대해 날선 비판도 했다. 이 회장은 “정치권은 무차별적인 복지로 재정건전성마저 위협하고 있다”며 “세계경제포럼(WEF)도 한국 경쟁력의 취약점으로 ‘정치인에 대한 낮은 신뢰’와 ‘정부규제 부담’ 등을 지적한 바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WEF는 우리나라의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 순위를 지난해 111위에서 올해 117위로 떨어뜨렸고, ‘정부 규제 부담’ 순위는 117위에서 114위로 높였다.

이 회장은 지난 26일 환노위 전체회의에 노조법 개정안이 상정된 것에 대해서도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이 개정안은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규정 삭제, 근로시간면제제도 폐지,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전면 폐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복수노조가 허용된 상황에서 이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모든 노조가 유급전임자를 요구하고, 노동조합의 수만큼 단체교섭이 진행돼 노사관계에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기아차가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기로 노조와 합의한 것에 대해서도 “글로벌 경쟁사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물량 확보에 힘쓰고 있을 때 우리만 역주행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는 “산업현장의 노사가 법과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게 원칙”이라며 “정치권은 노사관계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제도 정비 등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며 10여분간의 인사말을 마무리했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