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학자들은 대부분의 지식인, 정부 관료, 일반 대중으로부터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다. 경제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시점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도 그런 정책은 시장경제의 운행을 방해해 자원배분을 왜곡하기 때문에 시행하지 않아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기 일쑤다. 그러니 운이 좋아 대학 등에 직장을 얻지 않는 한, 밥 벌어 먹고 살 만한 데도 별로 없다.

20세기의 유명한 자유주의 학자들도 그랬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노벨 경제학상을 받고 지친 심신을 다소 회복했지만 사상적 개혁가가 되고자 했던 루트비히 폰 미제스는 미국에서 정식 교수직도 얻지 못하고 하이에크가 노벨상을 받기 1년 전인 1973년에 영면했다. 머레이 로스바드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네바다 라스베이거스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인간 행동을 꿰뚫는 방대한 책과 논문들은 인류 지성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런데 세상은 지금도 이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개입주의자들이 그리는 세상은 단순하다. 또 그들은 사회적 현안을 해결할 방법을 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그런 의지가 없어서이지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인간의 이성으로 쉽게 알 수 있고 추론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라, 그런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학자들의 경제학적 추론의 대부분은 ‘소극적’이라는 특징을 띤다. 시장에 개입하는 각종 정책을 만들지도 말고 시행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세계 경제의 불황을 지속시키고 있는 미국, 유럽, 일본 등의 통화팽창이 좋은 예다. 위의 학자들은 저금리 정책에 따른 통화팽창이 경기순환의 원인이고, 통화팽창에 의한 붐(boom) 다음에는 반드시 버스트(bust)가 오면서 경제가 불황에 빠진다는 사실을 밝혔다. 또 불황은 붐 동안에 이뤄졌던 과오투자를 해소하는 기간이고, 이는 정부 개입이 없는 시장과정에 의해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더욱 더 많은 돈이 풀리고 있어 세계 경제는 지금도 전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제 불황은 통화팽창의 필연적 결과이며 이로부터의 탈출은 또 다른 통화팽창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자유주의 학자들의 견해를 경청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정치권의 대기업에 대한 공세가 거세지만, 그 뜻하는 바가 모호하다. 그들의 주장대로 지배구조와 출자구조를 쉽게 바꿀 수 있고, 또 바꾸면 지금보다 더 강한 경쟁력으로 사업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복잡다단한 상업 세계를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 관련 구조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므로 인위적인 개편이 더 낫다는 논리는 맞지 않고, 물론 그런 사례도 없다는 것이 자유주의자들의 견해다.

재래시장을 살리려는 의도로 행해진 대형마트 영업 규제에 대해서도 자유주의 학자들은 소극적이다. 대형마트만 해도 우리가 다 알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공급망과 고용 구조로 형성돼 있다. 자생적으로 생긴 질서를 인위적으로 재편한다면 의도한 좋은 결과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 자유주의 학자들의 의견이다. 실제로 시행 결과도 그랬다. 어디 이뿐인가. 복지정책과 동반성장 등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하는 대부분의 정책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시카고대 교수를 지낸 프랭크 나이트는 자유주의 경제학적 추론의 소극적 특징을 “가장 해로운 것은 무지가 아니라 사실이 아닌 것을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변호한 바 있다. 그런 점을 경계하며 시장에 개입하지 말라는 것외엔 별다른 대책도 내놓지 않으면서,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는 정책에 대해 경고하는 자유주의자들의 견해를 사람들은 못 견뎌한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이들의 말을 경청한다면 세상은 한층 조용하고 풍요롭게 돌아갈 것이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경제학 yykim@chonnam.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