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화려했던 왕조의 영광…기억하라, 눈부신 해변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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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중부
마지막 왕조의 수도 후에
고대·현대 섞인 황릉 양식 눈길…무너진 황궁엔 전쟁 흔적 남아
해안따라 5성급 호텔 늘어서…전용 해변서 조용한 휴식을
마지막 왕조의 수도 후에
고대·현대 섞인 황릉 양식 눈길…무너진 황궁엔 전쟁 흔적 남아
해안따라 5성급 호텔 늘어서…전용 해변서 조용한 휴식을
인천공항에서 4시간30분. 다낭공항에 내리니 갑자기 비가 내린다. 11월까지는 우기여서 맑던 하늘이 언제 비구름을 몰고 와 한 차례 퍼부어 댈지 알 수가 없다. 북부의 하노이와 남부의 호찌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베트남 중부의 다낭, 호이안, 후에.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중반에 걸친 베트남 전쟁에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지역이다. 참전한 대한민국 해병 청룡부대가 철수할 때까지 주둔한 지역이기도 하다.
베트남 중부지방은 전쟁의 상처로 얼룩진 과거를 딛고 최근 관광과 휴양을 겸한 여행지로 떠오르는 곳이다. 해변을 따라 늘어선 5성급 리조트호텔과 베트남이 보유한 다섯 곳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세 군데가 이 지역에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끈다.
산유국이면서 원유를 수출하고 정제한 석유를 수입해 쓰는 이 나라에서, 월 수입이 20만원 남짓인 도시근로자들은 교통수단인 오토바이를 타기 위해 ℓ당 1400원대인 석유를 사서 쓴다. 북에서 남을 잇는 1번국도는 왕복 2차선이라 원활한 물류를 기대하기 어렵다. 쌀과 커피 수출이 세계 2위일 정도로 1차산업 비중이 높고 경쟁력 있는 제조업이 없는 베트남이 외국인을 끌어들일 수 있는 문화유적 복원과 휴양시설 투자 유치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다.
◆베트남 제3도시 다낭
인구 80만명의 다낭은 베트남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하얏트 리젠시 리조트, 선라이즈 비치 리조트, 크라운 플라자호텔 등 유럽식으로 지은 5성급 호텔들이 해안을 따라 자리잡고 있다. 리조트 안에 수영장 사우나 마사지 피트니스클럽 등 편의시설이 있어 불편 없이 한나절을 보낼 수 있다. 리조트 앞에 있는 전용 해변에 나가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다.
다낭 시내에는 참파박물관, 다낭대성당, 재래시장인 한시장 등 볼거리가 많다. 참파박물관은 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부 베트남에서 번영한 참족의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인도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불상과 힌두신의 조각이 많다. 예술적 가치가 높은 작품들은 베트남이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유출돼 루브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다낭대성당은 1923년 프랑스인들이 세운 천주교 성당이다. 천주교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베트남에서 불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9%의 신자를 가지고 있다. 분홍빛 성당 건물과 여러 성인들을 묘사한 중세 양식의 스테인드글라스를 감상할 수 있다.
서울의 한강과 같은 이름의 한강변에 자리한 한시장은 각종 열대 과일과 수산물 건어물 젓갈류 육류 등을 파는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이 한국 재래시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돼지고기를 부위별로 작게 조각내 도마에 올려 놓고 파는 모습이 이채롭다.
오행산은 동양철학의 오행(五行)을 본따 지은 이름으로 전체가 대리석으로 된 석산이다. 입구에 각종 대리석 제품을 전시 판매하는 매장이 즐비하고 중턱에 있는 사찰에서는 신도들이 불상 앞에 향을 피우고 기도하고 있다.
◆응우옌 왕조의 수도 후에
다낭에서 후에는 125㎞ 정도 거리지만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차로 세 시간 넘게 걸린다. 거리에 넘치는 오토바이와 자전거 물결을 피해 경적을 울리며 버스를 운전하는 실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낭과 후에의 경계인 하이번 고개는 디스커버리 채널이 때묻지 않은 해안풍경 때문에 세계 10대 비경의 하나로 선정한 곳이다. 군사적·지리적 거점으로 고개 꼭대기에 프랑스인들이 세운 요새는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관측소 엄폐호로 쓰였다고 한다.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수도로 베트남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이기도 하다. 응우옌 왕조의 번영을 말해 주는 황제릉과 황궁은 1993년 베트남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후에 황궁은 1802년부터 1945년까지 13대에 걸친 황제들이 지냈던 곳으로 가로·세로 2㎞, 높이 5m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벽 둘레에는 해자를 설치했다.
베트남 전쟁 이후 방치된 탓에 성 안에 민가가 형성돼 황궁 주변에는 집과 일터를 오가는 오토바이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황궁의 정문과 태화전 외에 폭격으로 소실된 건물들은 터만 남아 있다. 제12대 카이딘 황제의 능은 카이딘의 재위 기간 9년보다 긴 11년의 공사 끝에 고대와 현대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황릉 내부의 벽면을 유리와 도자기 조각으로 장식한 것이 눈에 띈다. 천장에는 용을 그려 놓아 관람객이 움직이면 용눈이 따라서 움직이는 느낌이 들게 했다.
유럽에서 온 배낭 여행객들이 유적지에서 같이 다니다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저마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기사 뒤에 한 명씩 타고 줄지어 움직인다. 베트남 운전기사 없이 오토바이를 빌려 직접 운전하는 외국인들도 있어 위험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버스로 움직이는 한국 여행객들과는 대조적이다.
후에의 밤은 어둡다. 하지만 저렴한 가격의 호텔과 술집들이 밀집한 신시가지의 ‘여행자 거리’는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바에 모여 춤추고 술 마시며 새로 만난 외국인들과 얘기를 나누느라 밤늦게까지 불이 밝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호이안 옛 시가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미손 유적지는 호이안에서 40㎞ 정도 떨어진 곳.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에 자리잡고 있다. 유적지 입구의 공연장에서는 무희들이 악기 리듬에 맞춰 베트남 전통춤 연습을 하고 있다. 베트남인들이 17세기에 멸망시킨 참파왕국의 유적지에서 베트남 춤 공연이라니 좀 씁쓸하다.
지금은 소수민족으로 고원지대와 메콩강 유역에서 살아가는 참족이 번영했던 시기(2~15세기)에 지은 참파왕국의 신전인 미손은 베트남의 ‘앙코르와트’로 불린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많이 훼손됐지만 벽돌로 쌓은 70여개의 건물군이 남아 있다. 참족들이 숭배한 힌두신들의 조각상은 불교를 믿는 베트남인들이 목을 쳐버려 몸통만 남아 있는 것이 많다.
호이안은 16세기께 동남아 최대의 도자기 중계 무역항으로 중국 일본과 서구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도시다. 199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호이안 옛 시가지는 과거의 전통적인 모습과 여행객을 위한 카페 상점 식당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마치 서울의 인사동 거리를 걷는 느낌이다.
1593년 일본인들이 세운 목조 지붕이 있는 다리 내원교는 중국인 거리와 일본인 거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했다. 여느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이 다리 앞에서도 과일 행상이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못 알아 듣는 체하고 돌아서면 어느 것이든 1달러에 살 수 있다. 미술품, 공예품, 맞춤옷가게는 드나드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일정이 넉넉하다면 맞춤옷가게에서 와이셔츠, 조끼, 재킷, 바지 등을 한국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맞춰 입을 수 있다.
여행팁
대한항공은 인천에서 다낭공항까지 주 4회(월·목·금·일요일 출발), 아시아나항공은 주 3회(월·수·토요일 출발) 직항을 운영하고 있다. 하나투어 등 여행사는 다낭·호이안·후에의 관광명소와 유적지를 둘러보는 관광형 상품 및 가족여행에 적합한 휴양형 상품을 내놓고 있다.
국내에서 미국 달러로 환전한 뒤 필요할 때마다 베트남 화폐인 동으로 바꿔 쓰면 편리하다. 호텔과 암시장의 가격차가 없으니 호텔에서 환전하면 된다.
소고기 닭고기 해산물을 넣은 3가지 종류의 쌀국수(퍼), 새우 농어 등 해산물요리, 새우 돼지고기 채소를 넣어 만든 월남쌈(고이 꾸언)은 꼭 맛봐야 할 베트남 음식이다. 단 길거리 음식은 위생 상태가 좋지 않으므로 눈으로만 먹고, 수돗물은 석회질이 많아 배탈이 날 수 있으니 꼭 생수를 사서 마셔야 한다.
다낭=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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