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12년차 소설가 백가흠(38·사진)의 첫 번째 장편 《나프탈렌》(현대문학)은 삶과 죽음에 관한 소묘다. 선명한 채색 없이 밑그림만으로도 인간의 욕망과 집착을 밀도 있게 그려낸다.

작가는 “개개의 옷 역사가 향으로 남아 있는 것이 나프탈렌이 아닌가 싶다”며 “개인의 역사도 그처럼 결국 향으로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처음엔 코를 찌르는 듯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은은하게 남는 나프탈렌 향과 인생이 어딘가 닮아 있다는 얘기다.

《나프탈렌》은 삶과 죽음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지만, 그 이전에 매우 재미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인물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요양원인 하늘수련원과 서울로 보이는 도시 양쪽에서 전개된다. 요덕수용소 간부 출신 탈북자로 수련원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최영래는 북한의 가족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도박판을 벌여 돈을 빼돌리려 하고, 말기 폐암 환자로 자신을 배신한 남편 민진홍과의 이혼을 준비하는 양자의 어머니 김덕이 여사는 지극정성으로 딸을 살리려다 자신이 암에 걸리고 만다. 6·25전쟁에서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트라우마로 젊음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교수이자 시인인 백용현은 그의 조교 공민지의 육체를 삶의 활력으로 삼으며, 공민지는 그런 백용현의 고독을 점점 이해하게 된다.

이들은 모두 돈, 목숨, 성(性) 등 각각의 욕망에 집착하는 날것 그대로의 인물로 그려진다. 작가는 사회화라는 거추장스러운 꺼풀을 인물들에서 벗겨내고 ‘인간이란 이런 것’이라고 역설하는 듯하다.

그는 “삶이라는 게 하나의 평면 위에서 서로 공유되며 흘러가는 게 아니라, 타인과의 소통 없이 죽음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양상을 보이는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욕망에 함몰돼 자기 주체를 잃어버린 성냥개비들이 하늘을 향해 꽂혀 있는 게 이 세상의 모습이라는 얘기다.

그는 “자기 성찰까지는 아니지만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한 번쯤 질문해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다”고 했다. 그래서 작품 속에 많은 여백을 남겼고,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주로 비참한 현실을 압축해 놓은 듯한 단편소설을 써왔다. 그는 “시가 아주 작은 사물에서 세계를 확장해 보이는 장르라면 단편소설은 넓은 세상을 하나의 단면으로 축소해 설명하는 방법”이라며 “이런 측면에서 장편은 단편보다 오히려 시에 가깝다”고 했다. 《나프탈렌》은 죽음이나 소멸, 구원의 문제를 인물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강하게 각인시킨다. 작가의 ‘장편론’이 맞다면 그는 첫 번째 장편부터 성공을 거둔 셈이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