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 투신' 후예 푸르덴셜투자증권 흡수…'자산관리 DNA' 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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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한화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의 역사
한화투자증권의 역사
한화증권은 지난 4일 한화투자증권(옛 푸르덴셜투자증권)을 흡수합병하고 합병회사 한화투자증권을 출범시켰다. ‘국민투자신탁’으로 출발해 3대 투자신탁회사의 하나로 전성기를 누렸던 푸르덴셜투자증권은 설립 3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스무살 아우’ 푸르덴셜증권 흡수
한화증권이 흡수합병한 푸르덴셜투자증권은 1982년 6월 국민투자신탁으로 출발했다. 1970년대 출범한 한국투자신탁, 대한투자신탁과 함께 ‘3투신’으로 불리며 1990년대 중반까지 국내 자산운용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금융권 최고 수준의 처우로 ‘꿈의 직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3투신은 1989년 주가 부양을 위한 정부의 ‘12·12 무제한 주식 매입’ 조치와 1999년 대우그룹 채권 부실화 등으로 동반 몰락의 길을 걸으며 인수·합병 시장의 매물로 전락했다. 국민투자신탁 역시 1997년 현대그룹에 넘어가 현대투자신탁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증권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부실 경영으로 또다시 자본잠식에 빠지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결국 2004년 미국 푸르덴셜금융그룹에 경영권이 넘어갔다.
푸르덴셜투자증권이 한화증권 자회사로 편입된 것은 2010년 6월이다.
한국투자신탁과 대한투자신탁이 각각 지금의 한국투자증권과 하나대투증권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달리 한화증권과 합병하면서 소멸 법인이 돼 자취를 감췄다.
푸르덴셜투자증권을 흡수합병한 한화증권은 1962년 7월 설립된 성도증권이 전신이다. 1976년 한화그룹 품에 안긴 뒤 1977년 제일증권으로 이름을 바꿨다. 1986년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한화증권 상호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96년부터다. 이후 증권업계 최초로 국채 펀드를 선보이고, 카자흐스탄 증권 시장에 진출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며 성장을 지속해왔다.
○‘자산관리 특화’ DNA는 남아
한화투자증권은 합병 직후 대표이사 직속 프라이빗뱅킹(PB) 전략팀을 신설하는 등 푸르덴셜투자증권의 자산관리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기존 자산관리(WM)·법인영업(wholesale)·글로벌마켓·기업금융(IB) 등 4개 총괄 역시 종합자산관리회사로서 기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WM 총괄 밑에는 고객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온라인과 모바일 서비스를 담당하는 매스티지(masstige) 본부를 신설했다. 매스티지는 ‘대중(mass)’과 ‘명품(prestige)’의 조합으로 대중에게 한 차원 높은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의미다. WM 컨설팅팀도 새로 만들어 지점을 대상으로 자산배분, 자산관리 기법, 세무 전문지식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글로벌마켓 총괄은 기존 2개 본부(글로벌 FICC, 글로벌 주식)를 글로벌 상품, 채권, 주식운용, 파생운용 4개로 세분화해 전문성 강화를 추구했다. 법인영업과 IB부문도 업무 전문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부서를 통폐합하고 명칭을 손봤다.
박용욱 한화투자증권 기획관리본부장은 “양사 조직의 시너지 추구에 초점을 맞춘 조직 개편”이라며 “옛 푸르덴션투자증권이 강점을 지녔던 PB 영업능력 육성을 통해 종합자산관리회사 도약 발판을 마련한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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