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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고 졸업후 35년 금형…마이크로미터 오차까지 눈으로 잡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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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낙훈의 기업인 탐구 - 조용설 <광진테크 사장>

    창업 4년만에 화재로 잿더미…거래처·직원 도움으로 '재기'
    20~30년 베테랑 40~60대 7명…납기 짧아도 신속히 납품 '신뢰'
    GM·벤츠용 볼트금형 공급…불황에도 하루 2시간씩 잔업

    경기도 광명에 있는 광진테크(사장 조용설·53)는 종업원 7명의 금형제조업체다. 요즘같은 불황에도 이 회사는 하루 평균 2시간씩 잔업을 한다. 휴일 근무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일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경기에 문을 닫는 금형업체들이 줄을 잇는 가운데 이 회사에 일감이 들어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2006년 3월 하순.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밤바람은 차가웠다. 경기도 광명의 금형 제조 공장에서 밤늦게까지 일한 뒤 퇴근해 곯아 떨어진 조용설 광진테크 사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불을 켜보니 새벽 4시쯤 됐을까. “사장님 큰일 났습니다. 공장에 불이 났습니다.”

    조 사장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전속력으로 차를 몰고 공장에 와보니 건물은 폭삭 무너져 내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기계와 원자재는 모두 타 버렸다. 불과 100㎡(30평)짜리 작은 공장이지만 이곳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자신의 분신이었다.

    공장 건물은 물론 선반 밀링 프레스 등 모든 기계가 불에 타 일그러졌다. 수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자식 같은 기계를 어루만지며 수건으로 닦아내자 그 위로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아무리 그을음을 걷어내도 열에 변형된 기계는 더 이상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고철 덩어리였다. 잿더미 속에서 건져낸 원자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금형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충남 부여 빈농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조 사장은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쳤지만 집안이 워낙 가난해 고등학교에는 진학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바로 위 형이 “기술 하나만 제대로 익히면 평생 밥은 먹고 살 수 있다”며 “내가 취직하면 학비를 대줄 테니 1년만 재수하며 열심히 공부해 공고에 진학하라”고 권유해 안양공고 기계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울 동북쪽 상봉동의 큰형 집에서 안양으로 3년간 통학한 뒤 1977년부터 금형업체에 취직해 일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일하며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네 식구를 먹여 살리던 어느날 그는 쇠를 깎다가 갑자기 ‘앗’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회전하는 기계에서 퉁겨져 나온 날카로운 쇳조각에 아킬레스건 부근을 다친 것이다. 한 달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고 복귀했다.

    금형업체에서 일한 지 25년이 되자 ‘이제는 내사업으로 승부를 걸때가 됐다’고 생각해 2002년 광명에서 창업했다. 부푼 꿈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불과 4년 만에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한 것이다. 화재로 넋이 나간 상태에서 좌절하던 그에게 위로의 손길이 다가왔다. 거래처 관계자는 “주문 대금 중 일부를 선금으로 드릴 테니 힘을 내십시오”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직원 중 한 명은 적금을 깨서 4000만원을 가져왔다.

    용기가 샘솟기 시작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거야.’ 공장 건물을 보수하고 선반 밀링 프레스를 들여놨다. ‘윙’ 하며 기계가 다시 돌아가자 거래처는 더 많은 일감을 몰아줬다. 이같이 각계의 도움이 몰린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조 사장의 ‘한우물 인생’을 신뢰한 것이다. 그는 국내 굴지의 금형업체를 거치며 쇠를 깎는 데는 누구 못지 않은 기술을 쌓았다. 금속에 구멍을 뚫고 안쪽을 가공하며 표면을 다듬는 기술을 두루 갖췄다. 열처리와 프레스 기술도 연마했다. 금형은 부품을 만드는 쇠틀이다. 정밀성이 생명이다. 그래야 한치의 오차도 없는 기계부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공고 졸업 후 지금까지 35년 동안 이 일을 해왔다. 이를 통해 마이크로 미터(㎛) 단위의 오차까지 눈과 손으로 잡아낼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 지금도 그는 직원들과 똑같이 기계 앞에 앉아 일한다. 잔업이 있을 땐 우선적으로 그의 몫이다.

    광진테크는 다이아몬드공구로 단단한 초경합금을 깎아 금형을 만든다. 이를 국내 10여개 업체에 납품한다. 이들 업체는 이 금형으로 자동차용 볼트를 제조해 현대자동차 벤츠 GM 등에 공급한다. 직원 7명의 작은 기업이지만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의 부품을 만드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전기밥솥이나 냉온수기 등 가전제품 부품을 만들기 위한 금형도 제조한다.

    둘째, 숙련된 기능인력을 확보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독산동이나 광명, 부천에 사는 사람들이다. 여러 사정상 지방으로 내려갈 여건이 안돼 수도권에 남아서 기계를 돌리고 있다. 몇몇 직원은 전 직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이다. 한솥밥을 먹은 지 20년이 넘은 사람도 있다. 연령은 40~60대에 이른다. 조 사장은 “직원들은 대부분 금형 경력이 20~30년인 베테랑들”이라며 “아마도 이런 수준의 기능인력을 가진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셋째, 신속한 납품이다. 주된 거래처는 자동차부품이나 가전부품을 만드는 1차 벤더들이다. 금형은 보통 보름이나 20일 정도의 여유를 주고 주문하는데 이들 중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2~3일 만에 금형을 제조해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금요일 오후에 주문하면서 월요일 오전 중에 공급해줄 것을 요청하는 사례도 있다.

    조 사장은 “아무리 납기가 짧아도 발주자가 원하는 날짜에 정확히 공급하는 것을 회사 방침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거래처와 신뢰가 쌓인 것이다. 이때는 조 사장도 함께 야근을 한다.

    그의 꿈은 좀 더 번듯한 공장에서 제대로 시설을 갖추고 사업을 하는 것이다. 금형을 가르칠 젊은이들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금형은 한두 해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숙련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며 “젊은이들이 이 분야를 기피하고 있어 대가 끊길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금형은 주조·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 등과 더불어 뿌리산업이다. 부품 생산의 기초 공정을 이룬다. 금형산업이 발전해야 자동차, 전자, 기계산업도 발전한다.

    그는 “정부가 뿌리산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는 유인책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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