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샤피로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만난 곳은 보스턴에서 약 16㎞ 떨어진 렉싱턴이라는 작은 도시였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됐던 렉싱턴 전투로 유명한 곳이다. 샤피로 교수는 “미국의 첫 전쟁이 벌어진 곳에서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게 됐다”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전공인 심리학을 협상전략에 도입한 그에게 협상은 평화를 위한 갈등 조정 도구다. 협상을 통해 갈등이 분쟁과 폭력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는 것이 스스로 생각하는 샤피로 교수의 사명이다.

그는 “사람들은 흔히 협상을 적대적 게임이나 흥정이라고 생각한다”며 “협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함께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바로 협상”이라는 설명이다.

샤피로 교수는 이를 위해 우선 협상을 ‘입장(position) 중심’에서 ‘이해(interest)’ 중심으로 바꿔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 입장은 이걸 꼭 가져야 한다는 것”이라는 태도로는 생산적인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 대신 서로의 ‘숨겨져 있는 이해(underlying interest)’를 찾아내면 일이 쉽게 풀릴 수 있다.

예를 들어 두 딸이 서로 오렌지를 갖겠다고 싸운다. 반으로 나누라고 해도 싫다고 한다. 이때 아버지는 오렌지가 왜 필요한지 묻는다. 한 명은 감기에 걸렸기 때문에 비타민C가 필요하고, 나머지 한 명은 요리수업에서 파이를 만들기 위해 오렌지 껍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렇게 숨겨진 이해를 찾으면 싸우거나 양보하지 않아도 모두가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샤피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접근법은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970년대 말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시나이반도의 영유권을 두고 분쟁을 벌일 당시 중재를 맡은 미국은 양측에 시나이반도를 원하는 이유를 물었다. 이집트는 수천년 전부터 자신들의 땅이었기 때문에 한뼘도 내어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이스라엘은 안보 때문에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이 제시한 중재안은 이집트가 영유권을 갖되 비무장지대를 설치해 이스라엘의 안보 우려를 덜어주자는 것이었다. 결국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샤피로 교수는 이어 “성공적인 협상을 위해서는 감정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흔히 협상에서 감정을 배제하라고 말하지만 이는 생각을 배제하라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와 동료들이 고안한 ‘다섯 가지 감정적 배려’를 잘 활용하면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협상 시 최고 결정권자가 아닌 실무자들이 비공식적인 회의를 통해 창의적인 해결책을 최대한 많이 도출하도록 하는 것도 좋은 협상 방법”이라고 말했다. 최고 결정권자는 한번 말을 뱉으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협상 시 갈등이 증폭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따라서 실무자들에게 최종 결정권은 주지 않더라도 창의적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재량권을 줘서 그 가운데 좋은 것을 결정권자가 선택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라는 조언이다.

이를 위해서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말단 직원까지도 협상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기업들이 새롭게 인재개발 전략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샤피로 교수는 조언했다.

렉싱턴(미국)=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