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꿈은 오페라 가수였어요. 하지만 목소리가 작은 데다 수줍음을 극복할 수 없었어요.”

‘추리소설의 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는 부끄러움이 많은 소녀였던 모양이다. 참으로 다행이다. 만약 그가 가수가 됐다면 숱한 명작 추리소설들을 만나볼 수 없었을 테니까.

122년 전 오늘, 영국 토키에서 태어난 크리스티는 어머니의 독특한 교육관으로 15세가 되어서야 학교에 입학했다. 가정교육을 받으며 책에 파묻혀 산 그는 11세 때부터 잡지에 소설을 투고할 정도로 글에 재능을 보였다.

1920년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으로 데뷔한 크리스티는 ‘비밀결사’ ‘골프장 살인사건’ 등이 잇따라 히트를 치며 스타 미스터리 작가로 자리를 잡았다. 1976년 눈을 감을 때까지 그가 내놓은 추리소설은 모두 80여편. 대부분이 베스트셀러였고, 4억부 이상 팔렸다. 희곡에도 정통해 1952년작인 ‘쥐덫’은 21년간 8862회라는 최장기 연극 공연기록을 세웠다. 소설 속 주인공인 에르퀼 푸아로 탐정이 그녀의 유작 ‘커튼’(1975)에서 죽었을 때는 뉴욕타임스에 부고가 실리기도 했다.

스물두 살 때 약혼을 파기하면서까지 이뤄낸 공군장교와의 불 같은 사랑, 남편의 외도, 이혼, 어머니의 죽음에 따른 충격으로 기억상실, 그리고 실종, 나이 마흔에 만난 14세 연하남과의 재혼 등 그녀의 삶 또한 한 편의 소설이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