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발급 과열…버젓이 '계단타기'까지
얼마 전 모 카드사 영업담당 직원은 신용카드 모집인에게서 ‘계단타기’를 해줄 테니 사례금을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계단타기란 대형 빌딩 사무실을 한 층씩 훑으면서 영업을 하는 방식으로, 카드 모집인들이 쓰는 은어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은 이 같은 방문을 통한 카드 모집을 금지하고 있다.

카드사 직원은 “모집인이 계단타기를 하겠다는 건물에 언론사와 국회까지 포함돼 있어 깜짝 놀랐다”며 “일부 카드사가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불법 영업이 번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감독 당국이 카드 불법 모집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번 밝혔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이를 비웃듯 오히려 불법 모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카드 발급 요건이 더 까다로워지기 전에 한 장이라도 더 많은 카드를 발급하려는 카드업계와 모집인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이르면 10월 말부터 적용되는 여전법 개정 시행령은 카드 발급 가능 연령 기준을 18세에서 20세로 높이고 신용등급 7등급 이하는 원칙적으로 발급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규제가 도입되면 가처분 소득을 감안해 카드론 한도 등의 규제를 받는 등 영업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불법 모집이 횡행하면서 신용카드 발급 수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카드 발급 수는 6월 말 현재 1억1637만장을 기록하며 3월 말보다 71만장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와 올해 1분기에는 각각 39만장과 648만장이 감소했다.

신용카드 발급 수가 다시 늘어난 것은 카드 불법 모집 단속의 실효성이 높지 않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주말과 수요일에 30명, 다른 요일에는 15명의 단속요원이 투입되지만 이들은 카드사들이 파견한 민간인이다. 불법 모집 행위를 적발했다고 해도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 단속에 참여한 한 직원은 “가방 속에 불법 판촉물이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아는데도 확인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며 “한 번은 불법 모집인이 여자 화장실로 도망가 관련 서류를 변기에 다 버렸는데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금감원 직원도 단속에 참여하지만 한 달에 한 번이 고작이다. .

이에 따라 금융감독 당국은 발급 신청 서류를 꼼꼼히 살피는 식으로 카드 발급이 정상적으로 이뤄졌는지 따져볼 계획이다. 권혁세 금감원장은 지난달 카드사 사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카드 발급 기준 강화 이전에 회원 수가 크게 증가한 카드사에 대해 중점 점검에 나서 위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엄중 제재하겠다고 경고했다. 소속 모집인의 모집 행위 점검 및 점검 방법을 회사 내부통제 기준에 반영토록 의무화했으며 이를 위반하면 업무정지 3개월 또는 과징금 5000만원, 기관 및 임직원 제재도 추진 중이다.

카드업계는 좌불안석이다. 카드업계의 한 임원은 “규제 강화 전에 카드 발급을 어느 정도 늘려야 하는데 정부가 카드 발급 관련 감독을 강화하고 있어 카드사 영업부서가 초긴장 상태”라고 말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