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시장경제학파(시카고학파)의 ‘몽 펠르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 2012’ 총회 첫날인 3일(현지시간) 가장 주목을 받은 주제 발표자는 앨런 멜처 미국 카네기멜론대 교수(사진)였다. 그는 “사회주의는 종말을 고했으나 사회복지는 끝나지 않았다”며 섣부른 복지정책이 초래하는 반복적 재앙을 경고했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정부와 정치권의 인기영합 복지정책이었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는 주된 이유도 끊기 힘든 ‘복지중독증’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다음은 멜처 교수의 발표 요지.

○美 금융위기 부른 인기영합 정치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짐 존슨이라는 인물을 연방주택담보대출협회(FNMA) 회장 자리에 앉혔다. 존슨은 1984년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선후보 캠프에서 일하던 선거참모였다. 정치적 인맥이 넓었던 그는 저소득층 주택 갖기 프로젝트를 전개하면서 FNMA 사업을 확장했다.

주택 갖기 프로젝트는 정치적 인기를 끌었다. 정부도 이를 촉진한다며 현금으로 내야 하는 주택 구입 선수금 규모를 낮췄다. 급기야 신용조차 없는 대출자들에게도 선수금을 물리지 않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권할 정도였다.

주택담보대출업체들은 앞다퉈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발행했다. 주요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되팔아 수익을 챙겼다. 위험자산을 보유한 만큼 자본을 더 확충하도록 규정돼 있었지만 은행들은 이를 지키지 않았다. 규제 당국도 제동을 걸지 않았다. 하원의 주택위원장까지 저소득층 주택 갖기 정책 확대를 촉구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도 이 정책을 이어받았다. 주택담보대출금보다 주택 가격이 떨어져 손실이 발생하거나 대출금을 갚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는 무시됐다. 전국적으로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예상은 빗나갔고 주택 가격은 급락했다. 소수인종과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갖기 정책을 확대하던 사회복지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주택 시장 붕괴는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복지비용보다 혜택만 보는 유권자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미국과 유로존의 생존을 위협하는 공통적인 문제가 있다. 정부가 연금과 건강보험, 실업수당 지출을 늘리도록 한목소리로 압박하는 유권자들이다. 유권자들은 누가 이런 복지비용을 댈지를 놓고 투표하지 않는다. 재정적자가 버틸 수 없는 지경까지, 시장에서 더 이상 재원을 마련하지 못할 때까지 증가하게 되는 이유다.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더 낮추고, 돈을 더 찍어낸다고 유로존 재정위기가 해소되진 않는다. 독일이 더 많은 아량을 베풀어야 한다고 재정위기국들은 요구하지만 독일은 문제의 핵심을 잘 알고 있다. 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의 생산비용은 독일보다 25~30% 높다.

이들 국가가 생산비용을 줄이지 않는 한 일시적으로 돈을 더 풀어도, 기준금리를 더 내려도 제대로 된 경제성장은 기대할 수 없다. 독일이 이들 국가에 노동 분야와 정부 정책의 진정한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법이 보이는데도 해법에 합의할 수 없는 상황은 유럽이 처한 또 다른 위기다. 유로존 재정위기국 정부들은 유권자들에게 비용 감수를 요구하길 거부하고 있다. 누가 복지 혜택을 받고, 누가 그 비용을 지불할지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돈만 푸는 케인스적 경기 부양

의도가 좋다면 결과도 좋다고 보는 게 케인스학파들과 케인스식 정책 입안자들의 결함이다. 이들에게는 경기 부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재정지출을 해야 할지가 중요하지, 지출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할지는 덜 중요하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경기를 살린다면서 9000억달러를 풀었으나 곳곳에서 술술 새는 자금이 많았다. 공사 계약자들이 동원하지도 않은 인건비와 설치하지도 않은 자재비를 받아가는 식의 부정이 비일비재했다.

2차 대전 이후 가장 성공적인 미국의 재정정책은 존 F 케네디 전 정부와 로널드 레이건 전 정부가 실시한 가계와 기업에 대한 지속적 감세정책이었다. 감세는 투자를 유도하는 인센티브였다.

프라하=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