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암흑기, 대한민국 고액자산가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글로벌 경기불황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투자자들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 머문지 오래고, 부동산 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경제 저성장 기조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액자산가들은 그동안 자신만의 재테크 경험과 노하우를 앞세워 거센 풍파를 헤쳐나가고 있다. <한경닷컴>은 자산 20~30억원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들의 자산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10명을 심층 인터뷰해 빈사 증시 생존전략의 속살을 들여다 봤다.

증시 침체기에 한국의 슈퍼리치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어떻게 지켜냈고, 어떤 금융상품에 주목했는지, 그 투자비법을 10회에 걸쳐 공개한다. <편집자 주>

"증시가 호황이면 당연히 주식을 늘릴 것이고 부동산 시장 전망이 좋다 싶으면 '부동산 불패신화'를 따르겠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특정 대상 하나에 덮어놓고 투자할 수 있는 때가 아닙니다."

세상이 변했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주식 적금 채권 부동산 등 투자 대상은 더 늘어났지만 무엇 하나 '이거다' 싶을 정도 안심하고 투자할 확실한 게 사라졌다.

그러나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수십수백억원대 고액자산가들은 여전히 수익을 내며 자산을 불리고 있다. 고액자산가들은 금융자산만 최소 1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여유있게 투자할 수 있는 투자자들이다.

[슈퍼리치의 투자비밀⑨] 압구정 15년 베테랑 PB "불확실 시대 ELS가 답"
고액자산가들의 자산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이환희 KB투자증권 압구정PB센터 팀장(사진)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크지 않더라도 꾸준하게 이익을 실현하는데 중점을 둔 '리스크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다양한 옵션을 이용해 안정성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매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ELS의 경우 종목 및 지수 등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수준까지 하락하지 않을 경우 확정된 수익이 가능하기 때문에 증시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현 시점에서 적절한 투자 선택이라는 얘기다.

이 팀장은 선임PB 경력 15년차의 베테랑이다. 압구정에서만 10년 이상 고액자산가들의 자산을 관리해왔으며 KB투자증권 압구정PB센터로 옮겨오기 전에 한국투자증권 압구정PB센터에서는 자산관리액이 1000억원을 넘었다.

◆리스크 관리가 '관건'…'지수형 ELS·배당주·회사채' 등 조언

최근 고액자산가들은 꾸준한 이익실현을 통한 리스크관리에 가장 큰 주안점을 두고 있다는 게 베테랑 PB의 말이다.

이 팀장은 "최근 증시 상황은 상승 추세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기보다 반복적인 악재에 출렁거림이 있을 상황으로 보고 있다"며 "정책 호재에 따른 반등 이후 실망으로 조정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 방향성이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주식현물, 고수익 ELS, 인덱스펀드 등을 통해 되도록 꾸준히 이익을 실현하는 쪽으로 투자 조언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시장의 호전세가 뚜렷해지면 포트폴리오를 중장기적인 전략으로 바꿀 계획이지만 그 전까지는 저가 매수와 차익실현을 반복하는 전략이다.

이 팀장은 "고수익을 확신할 수 있는 투자대상이 없기 때문에 ELS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문의도 늘고 있다"며 "예전 같이 ELS 상품이 모두 '대동소이'한 구조로 설계되지 않고 기초 자산과 개별 옵션을 달리한 다양화되고 있는 것도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ELS도 주식이나 종목형 대신 지수형을 선택하는 등 직접 주식을 포함한 주식투자를 위험도가 한 단계 덜한 안전자산으로 대체해 위험자산 비중 조절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꾸준한 배당수익이 보장되는 맥쿼리인프라 등과 같은 배당주나 안정성 대비 고수익을 얻을 수 있는 회사채도 현 시장 상황에서 적절한 대안이라는 게 이 팀장의 조언이다.

그는 "고액자산가들은 지난 2008년과 2010년 금융시장의 위험을 경험한 뒤로는 '덮어두고 장기 투자'식의 투자는 원하지 않고 있다"며 "공격형 투자자라도 주식 비중 30%(직접 투자), ELS 20%, 현금 20%, 금 등 상품 ETF와 세제혜택 상품 30% 수준으로 조절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ELS, 1년 새 10명 중 9명 상환…"기대수익 낮추고·투자기간 줄여야"

주변 경제환경이 안 좋은 만큼 기대수익률 눈높이를 많이 낮춰야 한다는 판단이다. '홈런'을 노리는 대신 단발 '안타'를 많이 때리면서 '아웃'당할 확률을 줄이라는 말이다.

이 팀장은 "가장 최근에 포트폴리오에 추천했던 사모형 ELS를 기존과 비교해 보면, 투자기간은 기존 6개월에서 4개월로 줄였고 첫 상환일을 90% 측정에서 85~80% 측정으로 낮췄다"며 "특히 '낙인(KNOCK-IN)'에서 '노-낙인'으로 안정성 옵션을 걸어서 위험을 줄였다"고 강조했다.

사모형 ELS의 경우 50명 미만으로 구성돼 적합한 지수대에 빠르게 상품을 설계하고 상품구조 또한 투자자가 원하는 형태로 맞출 수 있다.

그는 "세계 주요국들의 정책 공조 문제와 실물 경기회복 속도에 따라 금융시장의 침체기는 더 길어질 수도 있다"며 "미국·중국 등 주요국의 경기부양책과 저금리 기조, 풍부한 유동성을 감안한 보수적인 투자 방식이 적절한 시기"라고 귀띔했다. 침체기에 빠진 금융시장의 본격적인 회복세는 내년 하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팀장이 투자 포트폴리오에 활용하고 있는 상품 중에서는 KB자산배분ETF분할매수펀드나 사모형ELS(노낙인,세이프형), 중국본토적립식펀드 등이 관심을 가져볼 만한 안정적인 투자 상품이다.

노낙인 상품의 경우 투자기간 동안의 지수 변동과는 상관없이 만기평가일까지 약정된 구간 이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상품이다.

이 팀장은 "한 투자자는 지난 금융위기 이후 누적손실률이 24% 이상으로 떨어져 수익률 회복이 힘든 랩 상품이나 자문계좌를 정리, 제일모직S-Oil을 기초자산으로 한 사모형 ELS에 투자해 6개월 내 누적손실률을 10% 이상 만회하고 현재 재투자를 대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많은 ELS 상품의 기초자산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것들이 있다는 게 이 팀장의 말이다. 그는 "포스코+현대모비스(목표수익 연 15%), 코스피+현대모비스(연 14%) 등을 기초자산으로한 ELS 상품은 최근 꾸준히 상환되고 있다"며 "최근 지속적으로 재투자되는 ELS 상품의 기초자산은 코스피+SK텔레콤(연 12%), 삼성전자+SK텔레콤(연 18%), 삼성전자+LG화학(연 14%, 상환조건 85%부터 측정) 등이 있다"고 조언했다.

한경닷컴 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