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엘리베이터가 최근 보유 중인 자사주 전량을 매각했다. 이를 받아 간 곳은 모두 계열사다.

이에 따라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던 쉰들러그룹이 여전히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5%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경영권 강화를 위한 중장기 포석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2대 주주인 쉰들러그룹과 의결권 격차를 벌이면 내년 3월 주주총회에서 이사 선임 등이 보다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올해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자사주 전량(35만6226주)을 계열사 6곳에 넘겼다.

이에 따라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대금 415억9900만원이 유입되는 동시에 의결권(이사 선임 기준) 약 2.26%가 살아났다. 자사주는 발행 법인이 보유하고 있을 때는 의결권이 없지만 다른 주체에 양도될 때 의결권이 부활한다.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이번 자사주 매각은 재무구조 개선용이라고 못 박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현대엘리베이터의 재무구조가 최근 악화됐다고 보기 힘든 데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이사 임기 만료를 앞두고 매각에 나서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엘리베이터 이사 7명 중 내년 3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는 현 회장을 포함해 5명이다. 현 회장, 한상호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 진정호 해외사업본부장 등 사내이사 3명과 정종섭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원장, 함성득 고려대 정경대학 교수 등 사외 이사 2명이다.

최대주주인 현대로지스틱스가 특별관계자 등과 지분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2대주주인 쉰들러그룹이 M&A를 노리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375만6218주(총 발행주식 대비 35%)를 보유 중인 쉰들러그룹은 수원지법 여주지원에 현대엘리베이터의 회계열람을 신청한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현대엘리베이터가 자사주를 계열사에 매각해 현대로지스틱스측의 의결권을 늘리고 쉰들러그룹의 의결권을 줄어들게 했다.

실제 현대로지스틱스 측의 의결권은 자사주를 매각하기 이전 42.1%에서 매각 후 44.4%로 증가했다. 반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식수가 늘어나면서 쉰들러그룹의 의결권은 37.9%에서 36.8%로 축소됐다.

현대엘리베이터의 재무구조가 크게 악화되지 않은 점도 자사주 매각 배경에 관심이 가는 이유다.

지난 6월 말 기준 현대엘리베이터의 연결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2895억8100만원이다. 3월에 1차 유입된 자사주 매각 대금(302억원)을 감안하더라도 지난해 말(1245억원)과 2010년 말(1719억원)에 비해 크게 불어났다. 부채 총계도 8708억4500만원으로 최근 2년간 수준과 비슷하다.

현대엘리베이터 측은 "최근 재무구조가 나빠졌거나 상환 자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구체적인 재무구조 개선 계획 등은 함구했다.

한경닷컴 정인지 기자 inj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