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56)에게는 지천명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소녀 같다’는 형용사가 따라다닌다. 48세 때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법관에 오른 데 이어 직원 500명이 넘는 권익위를 이끌고 있지만 여장부 같은 걸걸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발의 생머리와 맑은 피부, 나직한 말투와 조심스런 손동작에서는 조용한 카리스마가 배어난다.

지독하던 무더위가 주춤해진 지난 17일 김 위원장을 만났다. 그가 초대한 곳은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충정각’. 한정식이나 중국음식점에 어울릴 법한 이름이지만 이탈리안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어린 시절 추억 서린 충정로

충정로는 김 위원장에게 추억이 깃든 특별한 곳이다. 지금 일하고 있는 권익위원회 근처이기도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무원이던 아버지가 전근하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전학온 학교가 바로 충정로에 있는 경기초등학교다. 레스토랑 충정각은 그가 권익위에 오고 난 뒤 우연히 알게 된 곳이다.

일제시대 선교사가 살던 집이었다는 이 식당 건물과 인근 골목길을 보면 초등학교 시절 낯설었던 서울의 추억이 떠오른다고 했다. “중학교 입학 시험을 봐야 해서 식구들 중 아버지와 제가 먼저 올라왔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앞에서 그 나이에 하숙을 했지요. 권익위에 오고 난 뒤 그때 골목길이 남아 있을까 하고 돌아봤는데 모두 바뀌어 있더군요. 그래도 이 식당 건물은 그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살려줍니다.”

김 위원장은 “충정로 인근에 있는 중학교(동명여중) 시절 집이 있던 가회동에서 통학을 위해 지금의 권익위 앞길을 지나 서울역까지 흙먼지 날리는 길을 매일 걸어다녔다”며 “아직도 그때의 서울거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소녀를 힘들게 했던 것은 외로운 하숙생활, 낯선 서울 풍경이 아니었다. 중학교 첫 영어 수업시간에 지적받은 부산 억양은 어린 김영란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경기여고 시절 우리반 대표로 영어 웅변대회에 나가게 됐어요. 시험은 잘보니까 선생님이 저를 내보내셨는데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하는 게 정말 공포였지요. 너무 열심히 연습하는 바람에 정작 웅변대회 당일 목이 잔뜩 잠겨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몰라요.(웃음)”

애피타이저로 나온 신선한 샐러드에 김 위원장이 직접 가져온 와인 ‘샤토마니’를 곁들였다. 충북 영동군에서 캠벨포도를 이용해 만드는 토종와인으로 지난달 영동군 민원현장을 찾아갔다가 사온 것이라고 했다.

“영동에서 와인농가의 민원을 듣고 오는 길에 기념으로 사온 것인데, 와이너리 근처에서 사면(민원 해결과 관련해) 돈을 받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한참 떨어진 슈퍼마켓에서 샀어요. 국산 와인도 향과 맛이 풍부해 좋은 분들을 만나는 자리에 내놓곤 합니다.”

○문학소녀, 법관이 되다

작가나 독일문학을 꿈꿨던 그에게 법관은 예상치 못했던 길이었다. 국문과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때문에 법을 공부하고 판사로 재직하는 내내 문학적 감수성과 법학을 연결하는 방법은 그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였다. 문학에 대한 아쉬움이 남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1999년 서울대 법대에서 ‘법률가는 창의적일 수 있는가’를 주제로 강연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강연에서 후배들에게 법률가는 너무 창의적이어서도 곤란하지만 인권의 영역을 넓혀나갈 때에는 창의적 면모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랜 고민을 통해 느껴왔던 점이었지요.”

문학적 감수성과 창의성이 있었기 때문일까. 김 위원장은 법관 시절,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보호하는 데 앞장섰다. 2005년 대법관 때 ‘딸들의 반란’이라고 불렸던 ‘여성을 종중원(宗中員)으로 인정하라’는 그의 의견이 다수의견으로 채택된 게 대표적 사례다. 학교 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강의석 학생 사건 판결도 김 위원장이 주심을 맡아 처리했다.

지금 몸담고 있는 권익위에서 청각·언어 장애인을 위해 화상수화통역 상담서비스를 개통했고, 서민들이 적은 비용으로 공정한 행정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임시구제조치를 확대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위원회에 접수되는 고충민원은 다른 기관에서 해결하지 못해 억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현장을 직접 찾아 우리 직원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모아 수십년간 해결되지 못한 민원을 해결할 때의 기쁨은 법관으로서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희열”이라고 말했다.

○연고주의 고리 끊을 ‘김영란법’

이날의 메인메뉴는 스파게티와 리조토. “이 집은 리조토가 맛있다”던 김 위원장의 추천대로 리조토는 탱글탱글한 식감을 유지한 쌀과 버섯향, 토마토 소스가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김 위원장은 시원하고 감칠맛 나는 봉골레 스파게티를 선택했다.

권익위는 22일부터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김 위원장이 취임한 뒤 야심차게 추진해온 법안으로, 그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공직자가 타인으로부터 100만원을 넘는 금품·향응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경우 대가성이 없어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수 금품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형에 처하고 공직자에게 금품을 준 사람도 똑같이 처벌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권익위원회는 국민고충처리위원회, 국가청렴위원회, 행정심판위원회 세 기구가 통합된 곳입니다. 우리 직원들이 이념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계기를 제시해줘야 했고 권익위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 부패척결이라고 생각했지요.”

이 법안의 초안이 나온 것은 지난해 6월. 입법예고까지 14개월이 걸렸다. 김 위원장은 “법의 내용을 보다 투명하고 쉽게 만들기 위해 다듬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대가성 없는 접대도 처벌한다는 내용에 다른 부처들이 견제하는 분위기가 강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처음 취지를 지킨 채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은 김 위원장이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관가의 평가다.

"은퇴 후엔 학생들과 책읽기 모임 하고 싶어"

그는 “제가 법률가 출신이라 ‘법도 모르는 사람이 일을 저질렀다’는 식의 오해를 받지 않고 신뢰를 얻은 것이 법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며 “법안은 형법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고민하며 수십번 수정해 만든 우리 직원들의 작품”이라며 공을 돌렸다.

“대가성 없는 금품·향응을 처벌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다”는 기자의 말에 소녀 같던 김 위원장의 눈빛이 단호하게 바뀌었다. 그는 “100만원이 넘는 선물과 접대는 스폰서”라고 잘라 말했다. 그 어떤 접대와 선물도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대가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또 “혈연 지연 학연 등 연고주의를 끊지 못하면 싱가포르처럼 깨끗한 나라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김 위원장은 “법안이 엄해 보이지만 대부분의 공무원은 이 법에서 자유롭다. 일부의 공무원들을 위해 연고주의의 고리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 법은 대부분의 공무원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아직까진 선물이나 접대를 거절하면 ‘혼자 고고한 척 한다’는 비난이 돌아오는 게 현실이에요. 이런 법이 생기면 공무원들이 부담스러운 선물이나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어요.”

○“재수없어 걸렸다”는 풍토 사라져야

정치권은 공천헌금 의혹이 제기되는 등 혼탁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치권의 청렴도를 높이기 위한 복안을 묻자 “어쩌면 되겠느냐”며 고민을 드러냈다.

“정치는 특히 청렴도가 떨어지는 분야로 평가되는 만큼 근본적인 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아직도 정치권에서는 부정부패로 처벌받는 것은 ‘재수 없어서 걸렸다’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정치권이 스스로 자정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니 어떤 답을 내놓을지 한번 보시죠.”

김 위원장은 정치권에서 ‘러브콜’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정치는 모른다. 해본 적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가 그리는 은퇴 후 계획은 무엇일까. “우선은 법에 대한 쉬운 책을 쓰고 싶어요. 제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지 않을까요. 나이가 더 들면 초·중등학생들과 책읽기 모임을 하고 싶어요. 입시에 지친 아이들에게 다양한 세상과 상상력을 나눠주고 싶습니다.”



김영란 위원장의 단골집 충정각

100년 된 집 개조…맛과 멋 느낄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맛과 멋을 한꺼번에 충족시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 9번출구로 나와 골목으로 들어가면 ‘충정각’ 현판을 단 오래된 서양식 벽돌집을 찾을 수 있다.

100여년 전 지어진 집을 수리해 2007년부터 갤러리 겸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다. 붉은 벽돌, 철제 창, 벽난로에서는 유럽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건물 정면의 현판과 마당 한쪽에서 고추 등이 자라고 있는 텃밭에서는 한국의 푸근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충정각은 한 달에 한 번꼴로 젊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도 연다.

대표메뉴는 스테이크와 파스타. 이탈리아식 볶음밥인 리조토도 인기가 많다. 봄·가을에는 텃밭과 장독대, 나무그늘이 있어 도심 속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테라스 석이 인기다. 영업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1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영업한다. (02)313-0424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