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컬렉션은 작가의 숨은 열정과 삶을 수집하는 것입니다. 주말이면 인사동 청담동을 찾아 작가의 인품과 인격을 구입한다는 생각으로 그림을 모았죠.”

서울 부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흥선 대원군의 별장 석파정(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6호)을 2006년 65억원에 인수, 미술 전시공간인 서울미술관으로 새단장해 28일 개관하는 안병광 유니온약품 회장(54·사진). 그는 “제약회사 영업사원 시절부터 30여년간 발품을 팔며 미술작품을 모으다보니 그림에 중독된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2010년 심장병 어린이와 노인요양원, 결손가정에 40억원 상당의 약품을 지원해 ‘서울시 봉사상’ 대상을 받은 그의 미술 사랑은 30여년 전 명동성당 앞 액자집에서 시작됐다.

“명동 성모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성당 쪽으로 내려가는데 비가 쏟아졌어요. 비를 피해 액자집에 들어갔는데 이중섭의 소 그림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뼈만 앙상하고 잔뜩 화가난 황소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는 당시 1만원 하던 이 소 그림 프린트 판화를 7000원에 사서 부인에게 선물했다. 이중섭 그림을 산 것은 그때가 처음이다.

“이중섭의 그림을 보고 아내가 좋아하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해요. 돈을 많이 벌어 이중섭 원화를 사주겠다고 약속했죠.”

그의 그림 컬렉션은 이후 본격화됐다. 1987년 여의도 아파트로 이사하면서부터 이중섭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아파트 아래층에 살던 구상 시인을 만났어요. 구상 시인은 1950년대 전후 피난시절 이중섭과 부산, 통영 등에서 활동하며 가깝게 지낸 사이였다더군요. 이중섭이 캔버스와 물감은 고사하고 연필과 종이조차 없어 미군들이 피우고 버린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말에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는 2010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중섭의 유화 ‘황소’를 35억6000만원에 낙찰받았다. 그가 소장하고 있는 이 화백의 ‘길 떠나는 가족’과 차액을 대금으로 지급했다. “30여년 전 아내에게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고 낙찰받은 겁니다.”

그는 “21세기 의약품 경영인은 문화를 전도하는 파수꾼이 돼야 한다”며 미술관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의약품 사업에도 감성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눈을 즐겁게 하고 취미생활도 하게 해주는 ‘아트 전략’으로 다가서야 한다는 것.

“아픈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와 약사가 있었기에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죠. 환자들에게 좋은 약품을 돌려주는 식으로 의사와 약사들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울미술관의 초대 관장은 미술평론가 이주헌 씨가 맡았다. 개관전 주제는 ‘둥섭(이중섭의 평안도 사투리), 르네상스로 가세!-이중섭과 르네상스 다방의 화가들’. 1950년대 초 부산 르네상스 다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중섭 이봉상 손응성 한묵 박석 정규 등 6명의 작가 작품 73점을 내보인다. 국내 두 번째로 높은 경매가를 기록한 이중섭의 ‘황소’ 등 34점과 이봉상의 ‘형제’, 한묵의 ‘모자상,’ 박고석의 ‘소’, 손응성의 ‘석류’ 등을 10월21일까지 만날 수 있다. (02)395-0217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