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국내 주식시장의 주도권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쥐고 있었다. 위기 극복을 위해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돈을 풀면 그 돈이 상대적으로 경기상황이 좋은 한국 등 이머징 마켓으로 흘러들어와 주가를 끌어올렸다.

올 1분기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두 차례에 걸친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시행하자 외국인 자금은 주식시장에 ‘베팅’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시작된 외국인 매수세 역시 ECB의 경기부양 정책에 대한 기대감이 ‘도화선’이 됐다는 점에서 1분기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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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외국인은 주식을 한 번 사기 시작하면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매수세를 지속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외국인 매수세가 몰리는 종목들은 두드러진 상승세를 보이며 시장의 주도주로 떠올랐다. 모처럼 찾아온 상승장에서 그동안의 손실을 만회하려면 외국인 매기(買氣)가 어디로 향하는지 주의 깊게 살펴야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 ‘일등공신’은 외국인 선물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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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매수 덕분에 코스피지수가 지난 8일 1900선을 회복했다. 지난달 24일 1769.31까지 떨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시장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최근 지수 상승을 이끌고 있는 1등공신은 외국인의 선물매수다. 선물시장은 현물시장에 선행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5월 그리스를 시발점으로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조짐을 보이자 선물시장에서 외국인들은 매도 포지션을 꾸준히 쌓아왔다. 그러다가 지난달 27일 외국인들이 선물시장에서 5516억원가량의 선물을 순매수하자 현물시장에서도 외국인 매수세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외국인의 선물 대량매수로 선물가격이 고평가되자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선물을 팔고, 가격이 싼 현물주식을 사는 매수차익 거래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9일 1조5000억원 규모의 외국인 순매수도 대부분 매수차익 거래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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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범 대우증권 AI팀장은 “그동안 외국인이 선물시장에서 3조원가량의 매도포지션을 쌓고 있었는데, 지난달 27일부터 외국인이 신규로 선물을 대거 매수하기 시작했다”며 “선물매수로 선물가격이 상승하자 기존에 매도포지션을 쌓았던 외국인들도 지난 9일부터 선물을 환매수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외국인 추가 유동성 공급 기대

와우넷 전문가들은 외국인들의 국내 주식 순매수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세영 대표는 “외국인들은 1, 2차 LTRO를 통해 막대한 유동성을 확보했지만, 그리스 스페인 등의 재정불안으로 그동안 투자를 미뤄왔다”며 “각국 중앙은행들의 추가 유동성 공급 기대감이 살아나면서 그동안 시장에 풀리지 않았던 유동성이 증시로 흘러들어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동구 대표도 “미국의 10년물 국채금리가 최근 상승하는 등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심리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연말까지 원·달러 환율이 1050원 선까지 떨어질 수 있어 외국인 입장에서는 주식을 매수하면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서 대표는 “유럽에서 돌발 악재만 불거지지 않는다면 상반기에 유입됐던 규모(약 8조원)의 외국인 자금이 하반기에도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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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넷 전문가 추천 종목

외국인이 증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만큼 종목 선택시 향후 외국인 매수세 유입이 예상되는 종목에 초점을 맞추라고 와우넷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배현철 대표는 삼성물산을 추천했다. 건설사업부의 실적 부담은 이미 주가에 반영된데다, 하반기에도 지속적인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는 이유에서다. 아울러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도 상승하고 있어 외국인뿐 아니라 기관의 매수세 유입도 예상된다고 배 대표는 전망했다.

이 대표는 지난 6일부터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수세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는 한화케미칼을 유망 종목으로 제시했다. 초심 박영수는 기아차를 권했다. 글로벌 경기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하반기에도 신차 ‘K3’ 모멘텀이 살아 있어 외국인 매수세 유입을 기대할 만하다는 분석이다.

이 밖에 서 대표는 호남석유 고려아연 신한지주 삼성증권 등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안정모 대표는 삼성전자 현대차를 추천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