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이 뜨겁다. 폭염 얘기가 아니라 런던올림픽 얘기다. 참기 어려운 열대야에도 사람들은 한국 청년들의 놀라운 성공에 열광했다. 가난과 부상, 실패와 좌절 등 갖은 난관을 뚫고 금메달을 딴 챔피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처구니없는 오심에도 불굴의 스포츠맨십을 보여준 조준호 신아람, 기립박수를 받고 눈물로 퇴장한 장미란, 그리고 어제 새벽 맨체스터 올드 트래포드 구장을 누빈 홍명보의 태극전사들, 한여름 밤을 뜨겁게 달군 이 모든 이름들이 참으로 아름답다.

이에 비하면 정치는 이제 막 대선레이스가 시작됐는데도 민망하리만큼 답답하고 짜증나는 분위기다. 사람들은 정치를 잊고 싶다. 불공정 경선 시비, 공천 장사 파동 등으로 얼룩진 그 골짜기에서 벗어나 잠시라도 올림픽 판타지에 모든 것을 잊고 싶을 뿐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 역사에서 사상 최고 성적을 거둘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런 승승장구를 가능케 한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 선수들이 남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빠르고 민첩하고 섬세하며 정확하고 배짱도 있다. ‘발 빠른’ 한국형 펜싱, 기술 힘 담력 모든 면에서 독보적인 수준을 과시한 유도 사격 체조 등 금메달 종목에서 여실히 드러난 점이다. 선수들의 탁월한 재능과 자질 덕이기도 하고 집중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의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반면 이들을 그렇게 만든 각종 인센티브의 힘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메달리스트들이 받고 누릴 금전적 유인과 명성과 영예, 그것이 가져올 물질적 성공의 기회 등. 축구의 성공을 두고 외국 언론이 비아냥거린 병역혜택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아니 태릉선수촌으로 상징되는 국가아마추어리즘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의 승리를 향한 열정과 의욕, 성취를 위한 헌신 앞에서는 이 모든 설명들이 그저 무색할 뿐이다. 그들은 목표를 세웠고 목표 달성을 위해 열렬히 투쟁했으며 마침내 이뤄냈다.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바로 경쟁과 성취의 의지였고 이를 향한 불굴의 헌신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 우리가 경쟁과 성취를 추구하는 성공의 유전자를 가졌고 우리의 아들딸들이 그것을 멋지게 발휘했다는 점이다. 경쟁을 두려워하고 기피했다면 그런 성공이 가능했을까. 승리와 성취에 대한 열망과 의지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을 엄두조차 낼 수 있었을까. 올림픽은 말한다. 마음과 몸, 전력을 다해 경쟁하라고. 우리는 그 정신을 받아들였으며 노력했고,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할지라도 성공도 이루고 있다.

경쟁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경쟁의 규칙이고 내부경쟁이다. 공정한 경쟁이 아름답다는 것을 올림픽만큼 잘 보여주는 계기는 없다. 한국 양궁의 경쟁력은 세계선수권 우승자가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기도 하는 공정하고 강력한 내부경쟁 구조에서 나온다. 영국 BBC에서 주목한 성공비결이다. 물론 경쟁의 결과가 누적되거나 고착돼 경쟁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경쟁의 기를 살려나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공정하고 치열한 내부경쟁 구조 없이는 결코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없다.

2002년 월드컵 4강으로 기억되는 붉은 악마는 그해 대통령 선거의 지형을 뒤엎었다. 그런 일이 또다시 생길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누구보다 대권의 꿈을 꾸는 사람들이 명심할 한 가지가 있다. 공정하고 치열한 내부경쟁을 거쳐 우리 올림픽 선수들처럼 멋진 시합을 하면 기적도 꿈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젊은이의 성공, 아니 좌절조차도 사람들을 열광시킨다. 아기처럼 기뻐하고 환호하며 새벽을 맞는 사람들, 이런 국민이 또 어디 있을까. 이런 열정과 신바람, 에너지를 살려 나가야 한다. 교육이 경제가, 그리고 정치가 이런 무한한 국민적 에너지원을 살려 나가야 한다. 이제 막바지로 내닫는 올림픽은 런던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다. 한반도의 한여름 밤과 새벽을 뜨겁게 달구면서, 그리고 머지않아 온 국민이 참가하는 민주주의 시합을 통해 계속 간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