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재벌해체로 가나] 대기업이 만들어낸 구조?…순환출자는 '정부 규제의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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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정부, 1986년 상호출자 금지 계열사 지분관계 정리때 발생…인수자금 분담하며 생기기도
일본·프랑스·대만 등 존재…규제하는 나라 거의 없어
정부, 1986년 상호출자 금지 계열사 지분관계 정리때 발생…인수자금 분담하며 생기기도
일본·프랑스·대만 등 존재…규제하는 나라 거의 없어
새누리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순환출자 규제를 들고 나온 배경에는 순환출자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재벌 총수가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 순환출자 구도를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한국 대기업만이 순환출자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도 5일 기자회견에서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고 경영하는 것을 막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인식이 기업이 출자(투자)를 결정하는 구조와 비즈니스 세계의 복잡성, 대기업들이 현 지배구조를 만들기까지의 역사성 등을 외면한 채 단순히 ‘순환출자=악’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순환출자는 정부 규제의 산물
우선 순환출자 구조는 재계가 의도적으로 도입했다고 볼 수 없다. 정부가 1986년 30대 기업집단 계열사 간 상호 출자 금지를 발표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호 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 간 지분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파생됐다는 얘기다.
여기에 정부가 총수 일가의 개인 지분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1994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소유지배구조 우수기업’ 제도를 도입한 것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 한도 적용 요건을 순자산의 40%에서 25%로 낮추면서 지배주주 및 특수관계인 지분이 5% 미만, 내부 지분율 합계가 10% 미만인 대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적용을 배제하기로 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출자총액제 규제를 피하기 위해 그룹 내 신규 출자 시 총수 개인보다는 계열사 간 출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순환출자가 본격 확산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때였다. 정부가 대기업들에 ‘1999년 말까지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맞추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대기업들은 전면적 유상증자에 나섰다.
1998년에만 5대 그룹 계열사 49개 업체가 유상증자와 자산 재평가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의 계열사 출자(증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이에 따라 순환출자 연결고리도 새로 생겨났다는 것이 재계의 설명이다.
◆가공자본은 출자만으로 발생
또 하나의 순환출자 확대 요인은 부실 기업 인수·합병(M&A) 및 친족 간 계열 분리다. 1998년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아자동차 인수, 2001년 두산그룹의 한국중공업 인수, 2003년 동부그룹의 아남반도체 인수가 부실 기업 및 공기업 인수로 순환출자가 확대된 사례다. 수조원에 달하는 인수자금을 계열사들이 나눠 부담하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순환출자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기아차를 인수할 수 있는 자금력을 갖고 있는 회사는 현대차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순환출자 구조는 한국 재벌들에만 해당되는 것일까. 아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덴소, 아이신 등 계열 부품사뿐 아니라 도요타자동직기, 동화부동산 등과도 순환출자 상호출자를 하고 있다. 독일의 도이체방크그룹, 루이비통으로 유명한 프랑스 LVMH그룹, 인도 최대 재벌인 타타그룹, 대만 1위 기업인 포모사그룹도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이처럼 순환출자를 규제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정치권의 ‘순환출자가 가공자본을 형성한다’는 논리도 오해에 기인한다. ‘가공자본은 계열사 자본총계의 총합과 결합 재무제표상의 자본총계 간의 차이’(김진방 인하대 교수)란 학계 정의에 따르면 가공자본은 한 기업이 다른 계열사에 어떤 형식으로 출자를 하든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자본금 1000억원짜리 A사가 계열사로 편입된 B사에 500억원을 출자할 경우 순환출자 여부에 관계없이 500억원의 가공자본이 생겨난다. 대차대조표상 B사에 A사가 출자한 자본금 500억원이 새로 잡혀도 A사의 자본금 1000억원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공자본이 순환출자 구조에서 더 확대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얘기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