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그랜드슬램의 사나이’ 김재범(27·한국마사회)의 투혼 뒤에는 부상을 보완하는 과학적인 훈련과 강한 정신력이 있었다.

김재범은 31일 엑셀런던노스아레나에서 열린 남자 유도 81㎏급 결승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결승에서 패배를 안겼던 독일의 올레 비쇼프를 상대로 유효승을 거두고 올림픽 금메달의 한을 풀었다. 아시아선수권·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대회에 이어 올림픽까지 정복하면서 그랜드슬램도 달성했다.

이번 금메달은 부상으로 몸 왼쪽의 힘을 쓰지 못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따낸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크다. 김재범은 지난해 12월 KRA 코리아월드컵 국제유도대회를 치르다 왼쪽 어깨 탈골로 대회를 포기했고, 올림픽 출전을 앞둔 올 6월엔 왼쪽 무릎 인대까지 다쳤다. 그는 “왼쪽 어깨는 물론 팔꿈치와 손가락, 무릎까지 아파 몸의 왼쪽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며 “전날까지 제대로 뛰지도 못할 정도여서 진통제를 맞아가며 훈련했다”고 털어놓았다.

업어치기와 안다리 기술을 주로 쓰는 그에게 왼쪽 관절 부상은 치명적이었다. 체육과학연구원이 지난달 말 측정한 근력은 심각한 좌우 비대칭을 보여준다. 안다리 기술을 쓸 때 주로 사용하는 무릎을 구부릴 경우 왼쪽 근력이 오른쪽의 69%에 불과했다. 업어치기에 쓰이는 팔꿈치를 펼 때도 왼쪽 근력이 오른쪽의 69%에 지나지 않았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는 좌우 근력 밸런스가 최상이었는데도 비쇼프에게 유효패를 당했다.

유도를 담당하는 김영수 체육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좌우 기술을 다 쓰는 김재범은 양쪽 근력 차이가 커 기술을 구사하기 어려웠지만 부상으로 인한 밸런스 차이를 노련한 경기운영과 경험으로 극복했다”고 설명했다.

좌우 근력의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한 훈련은 섬세하면서도 혹독했다. 무릎 부상은 극비에 부쳤다. 단체운동이 끝난 뒤 저녁엔 혼자 왼쪽 근력을 보강하기 위한 튜브운동에 열중했다. 튜브운동은 강한 탄력의 튜브를 어깨나 다리에 걸고 당겨 근력을 키우는 것. 강도를 점차 높여나가며 근력 보강에 집중했다.

부족한 근력은 타고난 유연성으로 극복했다. 상대의 공격 기술을 부드럽게 피하며 공격 기회를 만들었다. 체육과학연구원의 측정 결과 김재범은 허리를 굽혔을 때 손바닥이 발가락 밑으로 25~26㎝나 내려갈 정도로 유연했다. 김 수석은 “김재범은 12~13㎝에 이르는 일반인보다 2배 이상 유연하다. 운동선수 중에서도 유연성이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금메달을 향한 강인한 정신력이었다. 훈련모습을 옆에서 지켜본 김 선임은 “김재범은 유도 대표선수 가운데 가장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줬다”며 “73㎏급에서 81㎏급으로 한 체급 올려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든데 김재범은 체급을 올린 지 1년 만에 2008년 베이징에서 은메달을 거머쥐었고, 런던에선 결국 금메달을 따냈다”고 평가했다.

상대 선수들에 대한 기술적 분석도 한몫했다. 체육과학연구원은 라이벌 선수들의 경기 동영상을 구해 선수 및 코칭스태프와 함께 기술조합을 분석했다. 기술별 득점 빈도를 비롯해 비쇼프가 옷깃을 어떤 자세로 잡으면 무슨 기술이 나오는지도 상세하게 정리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