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0년 5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표면적으로는 석유류와 농산물 등의 가격안정에 따른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근 급등하고 있는 국제 곡물가격 여파가 국내에 상륙하고 유가까지 상승세로 전환할 경우 다시 물가가 급등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

1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1.5%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5월(1.1%) 이후 2년2개월 만에 최저치다. 올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1~2월 3%대에서 3월 2.6%로 내린 후 지난달 처음 1%대로 꺾였다.

석유류와 농·수·축산물의 가격 하락이 물가 안정을 주도했다. 석유류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4.1% 내렸고 과실(-4.2%)과 채소(-1.3%) 등도 하락했다. 물가의 장기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석유류 제외) 상승률도 전년 동월 대비 1.2%에 그쳤다. 올봄 극심한 가뭄 탓에 배추 등 일부 농산물 값이 이상 조짐을 보였던 것과는 대조되는 결과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해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5%(전년 동월 대비)에 달했기 때문에 전년 동기 상승률이 특히 낮게 나왔다”며 “최근 가뭄이 해소되면서 양파 등 농산물 수급에 숨통이 트인 것도 한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유가가 하향안정세를 보이고 있는 점도 물가하락을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명목상의 지표만으로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세를 보인 점도 작용했지만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이 서비스 물가를 끌어내린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낮은 소득수준과 높은 가계부채가 물가하락의 주요 요인이라는 얘기다. 재정부 관계자도 “경기 불확실성 탓에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공산품 가격도 올리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하지만 향후 물가불안이 재연될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세계적 이상 기후로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데다 유가도 다시 꿈틀대고 있어서다. 지난 6월 배럴당 94.4달러로 안정세를 보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달 99.1달러로 상승시동을 다시 건 상태다.

특히 이달엔 가공식품업체들이 원가 상승을 이유로 줄줄이 가격을 올리고 있다. 전력요금도 인상폭에 따라 물가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태풍과 추석 명절 수요로 인해 국내 농산물 가격도 불안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와 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된 상태에서 공급 부문까지 문제가 생긴다면 경제불안 심리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지금처럼 물가가 안정된다면 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끌어올릴 수도 있겠지만 소비심리가 좋지 않아 정책 실효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