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은행 내규를 통해 고령자에 대한 대출 취급을 제한해오다 금융당국의 시정요구를 받았다.

또 기업은행과 신한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은행들도 일부 신용대출 상품의 여신심사 때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고령자 대출을 사실상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은행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14개 시중은행에 공문을 보내 “고령자라는 이유만으로 대출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며 “차주의 신용평가와 상환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지 않고 처음부터 나이를 기준으로 배제하는 것은 문제”라고 시정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지난 7월 시중은행들을 대상으로 고령자 대출 현황에 대한 실태 점검을 벌였다. 점검 결과 고령자에게 대출심사 시 불이익을 주거나 연령 제한을 두고 있는 은행권의 대출 상품은 50여개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산업은행은 내규에 대출취급 제한 연령을 ‘60세 이상’ 또는 ‘65세 이상’ 등 명시적으로 못박은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 관계자는 “다른 은행들은 신용대출 상품을 취급하면서 60세 이상에 대해서는 심사를 까다롭게 하는 방식으로 대출을 제한했다”며 “감독규정이나 법규를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회 통념상 연령에 따른 차별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나이스신용정보에 따르면 5월 말 기준 은행권의 대출 가운데 60세 이상 고령자 대출은 약 88조원으로 전체 대출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은행들은 고령자들의 소득기반이 취약하거나 장래 소득이 불확실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용대출을 제한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3월 말 기준 60대 이상의 소득 대비 부채비율은 112.1%로 다른 연령대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이상 차주의 연체율도 1.16%로 50대(1.42%)보다는 낮았지만 30대(0.6%)와 40대(1.1%)보다 크게 높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채무상환능력에 대한 심사 없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획일적으로 대출을 거절하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는 게 감독당국의 판단이다. “59세인 사람에겐 대출하면서 60세인 사람에겐 대출을 하지 말라는 것은 차별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한편 금감원은 이날 오후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시중은행 수석부행장들과 감담회를 갖고 “연령뿐만 아니라 학력 성별 인종 등에 따른 차별이 없는지 확인해 바로잡아줄 것”을 지시했다. 금감원은 조만간 은행의 내규 혹은 약관 등에 차별적인 내용이 포함돼 있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간담회에서는 가산금리 비교 공시 방안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금감원은 은행들과의 협의를 거쳐 은행별로 개인 고객의 신용등급에 따른 가산금리 수준을 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공시하도록 할 방침이다. 지금은 주택담보대출의 최고금리와 최저금리만 공시되고 있는데, 신용대출에선 신용등급별 가산금리가 구체적으로 공개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시스템을 갖춰 9월 중엔 비교공시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며 “비교공시가 이뤄지면 경쟁이 심화돼 자연스럽게 가산금리가 낮아지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