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의 눈물…무너지는 '중개 비즈니스'
대내외 경제 여건 악화로 살기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곤 하지만 금융중개인들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지난 4월 변액연금보험 수익률 논란이 불거진 후 금융중개 대표 직군인 보험설계사들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판매량이 반토막난 데다 회사에서 받던 수당까지 크게 깎여서다.

2001년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한 이모씨는 첫해 사내 연도대상 시상식에서 ‘톱10’ 안에 들었다. 당시 억대 연봉은 물론 신인상 상금으로만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하지만 그 역시 요즘 생활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씨는 “처음 2~3년은 친척과 친구, 전 직장 동료 등 연고 위주로 영업해 괜찮은 실적을 냈지만 요즘은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매달 회사에서 출퇴근 수당 명목으로 받던 정착수당까지 없어져 점심값을 아껴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보험설계사의 눈물…무너지는 '중개 비즈니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 37만여명에 달하는 설계사들의 월평균 소득은 지난 3월 기준 300만원 정도다. 2007년에는 평균 309만원까지 올랐지만 금융위기 이후 한번도 이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설계사들이 고객관리를 위해 매달 지출하는 비용이 평균 소득 대비 25%(작년 7월 보험연구원 조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손에 쥐는 돈은 월 200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수익률 논란으로 변액연금 판매량이 반토막난 데다 이미 보험을 든 고객들의 해약이 늘면서 보험사에서 받은 수당을 뱉어내야 하는 상황까지 맞고 있다. 고객들이 일정 기간 내 보험 계약을 해지하면 이에 따른 부담은 설계사가 떠안는다. 고객이 보험 계약을 맺을 때 ‘충분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면, 보험사가 원금을 대지급하고 손실분을 설계사에게 청구하는 식이다.

지난 3월 인천에서 14년간 설계사로 일해온 조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조씨는 딸에게 남긴 유서에 “변액연금 등 문제가 대책을 마련하기 어려울 정도로 끊임없이 터졌다. 감당하기 어렵다”고 썼다. 조씨의 언니 조복심 씨(57·사진)는 “동생이 수당으로 받았던 돈과 원금 손실분을 3억원 넘게 물어줬다”며 “모든 잘못을 설계사에게 돌리는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말했다.

당국이 설계사 모집수당 지급 체계를 장기간에 걸쳐 나눠 지급하는 식으로 바꾼 것도 당장은 설계사들의 수입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다른 회사의 설계사는 “예전에는 월 10만원짜리 계약을 한 건 체결하면 그 다음달 50만~60만원 정도 수당을 받았는데 요즘은 20만~30만원 받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라이나생명은 설계사 모집수당을 첫해는 종전의 10%만 주고 수년에 걸쳐 나머지를 지급하는 상품을 내놨다.

경기 침체 속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것은 보험설계사뿐만이 아니다. 대출모집인이나 공인중개사 등 ‘중개 비즈니스’ 종사자가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이다. 온라인 거래가 늘면서 중개업자의 필요성이 떨어진 탓이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설계사 등은 전문성보다 생계 문제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전문성 제고와 함께 금융중개업 겸업화 등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