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직장생활 중 23년간 CEO
적자기업 '구원투수'로 활약…돈 버는 회사 처음 맡아 기뻤죠
'유학파에 질수 없다'노력했더니…
"정말 한국인 맞냐?" 외국인도 감탄…영어 프레젠테이션의 교본으로 통해
“가장 맛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은 편안한 식사 자리보다 힘든 여정 속에 있죠. 가파른 등산 길에 마시는 물이, 땀내 나는 유격 훈련 뒤에 먹는 건빵이 그렇지 않습니까.”
황성호 우리투자증권 사장은 이탈리아나 그리스, 터키 등 남부 유럽의 음식을 좋아한다. 파스타나 그릭 샐러드(Greek salad)를 즐긴다. 입맛이 없을 때는 이태원 등지의 수블라키(그리스식 꼬치)나 무사카(그리스식 고기 야채 볶음) 전문 레스토랑을 찾기도 한다. 좋아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가장 힘들던 시절 함께했던 음식이기 때문”이란다. 1990년대 중반 한화그룹이 주인이던 그리스 아테네은행 공동 대표로 재임하던 시기다.
외국계 은행 대표는 다들 선망하는 자리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30대 때부터 여러 금융회사의 대표를 맡아왔지만 우리투자증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위기 상황에 처한 적자 기업이었다. 아테네은행 대표 시절은 그에게 각별히 힘든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정확히 40세때 낯선 타국에 부임했다.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적자투성이 은행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현지 노조와 1년여간 극심한 갈등도 겪었다. 돌이켜 회상하면 치열했던 삶과 함께 그곳의 뜨거운 풍광,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 양고기 냄새와 올리브향이 배어 있던 음식이 반가운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노조와의 갈등, 그리고 1년 만의 흑자전환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 파크센터 지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올라(Ola)’. 황 사장이 자주 찾는 식당이다. 올라는 서울과 수도권에 6곳의 지점을 갖고 있다. 여의도에도 2곳이 있다. “이 중 메리어트 파크센터점이 이탈리아 전통 음식 맛과 향을 가장 잘 구현했다”는 게 그의 평가다. 남유럽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곳 음식을 먹으며 아테네은행 대표 시절의 어려움과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꾸었던 꿈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꿈. 그에게 꿈은 삶의 동력이다. “어릴 때부터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꿈을 꾸어 왔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고 한다. 그래서 꿈이 없는 직원을 그는 싫어한다. 반대로 자신만의 꿈을 꾸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직원을 존중하고 좋아한다. 그에게 꿈은 결국 치열함이다.
“40세 때 한화그룹이 대주주인 아테네은행 대표로 부임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그쪽 사람들 근무 행태를 아시잖아요. 한마디로 엉망이었습니다. 지점이 20여개가 있었는데 지점장 회의를 소집하니, 노조위원장과 먼저 회의를 하고 오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어이가 없었죠.”
당연히 노조와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테네은행 노조는 매일 ‘노조통신’을 냈다. 그 통신을 한화그룹 본사에 보냈다. 거기에는 황 대표를 흠집 내는 내용이 담겨 있는 건 물론이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 노조와 담판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것도 그만이 가진 꿈 덕분이었다.
“부임할 때부터 적자은행을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가자마자 꿈을 실현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하지만 꿈을 꺾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노조위원장과 담판을 지었고, 1년 만에 흑자로 돌려 놓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한창 젊었을 때 일입니다만, 하하.”
◆외국인도 감탄하는 영어 고수
아테네은행 시절을 회고하는 동안 에피타이저인 관자 요리에 이어 푸아그라 샐러드와 콘길리에(파스타의 일종)가 나왔다. 화제를 바꿨다. 올라를 얼마나 자주 찾는지를 물었다. “주로 외국인 친구들이 오면 이곳에서 대접하곤 한다”는 설명이 돌아온다. 친구들에게 한국에도 유럽 본토 못지않은 유럽식 레스토랑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어 이곳에 함께 온다고 한다.
그는 외국인 친구가 유난히 많다. 전화로 교류하는 친구들까지 합치면 셀 수 없을 정도란다. 7년간의 해외 근무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영어가 되기 때문’이다. 황 사장은 외국계 출신 대표들이 즐비한 여의도 금융가에서도 영어 잘하는 최고경영자(CEO)로 소문이 났다. 그의 영어 프레젠테이션은 모범 교본으로 통한다. 그의 프레젠테이션을 듣던 외국 기자가 ‘정말 한국인 맞느냐’고 질문했을 정도다. 그런 질문을 받게 된 것도 어릴 때 가졌던 꿈 덕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영어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외워오라’는 여름방학 숙제가 있었는데 반에서 유일하게 저 혼자 숙제를 했죠. 가정 형편상 참고서를 살 여건이 안되다보니 대학생 형의 취직 시험용 교재를 빌려보곤 했습니다.”
지금도 그는 금융 관련 서적을 외국 원서로 읽는다. 복잡한 금융 상품 구조를 파악하는 데는 한글 서적보다 오히려 영어가 낫기 때문이다. 금융 분야의 글로벌 트렌드를 한발 먼저 접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첫 직장인 씨티은행도 그가 영어에 대한 열정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 그는 당시 입사 동기 중 유일하게 학사 출신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근무했던 하영구 씨티은행장과 강정원 전 KB국민은행장, 민유성 티스톤 회장 등 대부분이 외국에서 경영대학원(MBA)을 나왔다. 기라성 같은 유학파들 속에서 황 사장은 그만큼 필사적이었고, 지금의 그를 만든 토양이 됐다.
◆“30대에 CEO…가문의 영광이었죠”
어려움을 무기로 만드는 그의 특기는 여러 기업의 CEO 생활을 하면서 발휘됐다. 그는 1989년 36세의 나이에 다이너스클럽카드의 한국 법인장을 맡은 이후 줄곧 CEO를 해왔다. 33년의 직장생활 중 23년을 CEO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CEO로 임명돼서 기뻤던 적은 2009년 우리투자증권 사장에 취임했을 때가 유일했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돈버는 회사’의 사장이 됐기 때문이다. 그전의 20년간은 적자 회사를 돌며 구원투수로 등판했다는 얘기다.
“30대에 다이너스클럽카드 CEO가 됐을 때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후회 없이 내 뜻대로 해 보자고 결심했죠.” 그가 다이너스클럽카드 CEO를 맡고 처음 한 일은 모기업인 씨티은행에서 파견 나온 간부들을 다이너스클럽카드 소속으로 바꾼 것이다. ‘퇴로를 만들지 말고 여기서 죽을 각오로 일하라’는 의미였다.
"우리투자증권이 선도회사 되는 거 보고 싶어"
당시 외국계 기업의 장점인 토요휴무제도 없앴다. 물론 노조의 반발이 거셌다. 하지만 “적자 기업이 토요일에도 쉬면 안된다”고 설득해 토요일에도 근무하는 풍토를 만들었다. 그 결과 연간 70여억원의 적자를 보던 회사를 구조조정 한번 없이 3년 만에 흑자로 돌려놨다. 다른 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테네은행 대표와 한화 헝가리은행장을 거쳐 제일투자신탁증권에서도 그랬다.
◆“국내에서도 글로벌 IB가 나왔으면…”
집어든 파스타가 담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담백한 파스타 맛이 느껴지는 순간 황 사장의 연애시절이 궁금해졌다. “대학 1학년 때인 1972년 처음 만났습니다. 친구 소개를 받았죠. 그후 지금까지 40년 동안 같이하고 있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연인이라고나 할까요?”
대학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함께한다니.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해가 가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연애도 그의 인생을 닮았다. 어려운 기업을 맡아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나, 금융산업이라는 한우물을 파는 것이나 뚝심이 없으면 힘들 것 같았다. 그 뚝심의 끝은 어디일까. 그가 그리는 이상적인 국내 금융산업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얼마 전 투자은행(IB) 분야 국내 리더들이 모이는 서울IB포럼에서 ‘왜 우리는 글로벌 IB가 없는가’를 주제로 40분간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국내 금융자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지금의 금융환경으로는 이 같은 서비스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게 골자였죠. IB와 트레이딩, 자산관리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상품 라인업을 갖추지 못하면 글로벌 IB들을 따라잡기는커녕 고객들의 자산운용 니즈에도 부응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자네의 꿈은 무엇인가
황 사장은 우리투자증권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직원들에게 꿈을 물었다. 창구업무를 맡고 있는 여직원들은 “과장이나 대리 선배들처럼 영업현장을 누비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황 사장은 여직원들의 진급 기준을 ‘최소 5년’에서 ‘최소 3년’으로 낮췄다. 영업 현장에 나갈 수 있는 길을 빨리 터준 셈이다.
그는 지점장들과 만나서도 꿈을 물었다. 지점장들의 꿈은 “남들처럼 연 3억~4억원씩 목돈을 벌고 싶다”는 것이었다. 황 사장은 지점장들도 영업에 나서도록 했다. 이를 통해 120명의 지점장 중 10여명은 고액 연봉의 꿈을 이뤘다. 그는 그렇게 조직 문화를 바꾸고 있다. “꿈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자신의 꿈이 정해지면 이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지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도미 스튜에 이어 디저트가 나올 때쯤 그에게 지금의 꿈을 물었다. “1등입니다. ‘CEO의 삶이 이제 얼마 남았다’고 매일 생각합니다. 우리투자증권이 증권업계에 우뚝 선 선도회사가 되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황성호 사장의 단골집 '올라'
이탈리안 레스토랑…매콤한 해산물 스파게티 유명
올라(6호점)는 서울 여의도 메리어트파크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1999년 경기도 의왕시 백운호수 인근에 문을 연 1호점이 유명해지면서 지점을 늘렸고 6호점인 메리어트파크센터점은 2009년 설립됐다. 원목을 그대로 사용한 탁자와 통나무 기둥 등 자연적 느낌을 살린 인테리어로 유명하다. 요리는 한국적 입맛을 가미했다기보다는 이탈리아 전통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단호박 크림수프, 얇게 채 썬 감자튀김과 치킨 샐러드, 매콤한 해산물 스파게티와 누룽지 스파게티 등이 유명하다. 가격은 스파게티가 1만9000원, 스테이크는 3만8000원 수준이다. 여의도에서 활동하는 국회의원과 증권업계 인사들이 자주 찾는다. 산뜻한 내부 구조에 깔끔한 음식맛을 갖췄다는 게 단골들의 평가다. 오전 10시30분부터 밤 10시30분까지 문을 열고 연중 무휴로 운영된다. (02)2070-7220
고경봉/윤아영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