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 가치가 급락세를 지속하자 전자업계는 초비상 상태다. 매출의 20~30%가 유럽에서 발생하는 구조여서 유로화 가치가 추락하자 수익성도 동반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산성 악화의 영향은 이번주 발표되는 2분기 실적부터 일부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3일 “유럽 재정위기로 유럽 쪽 매출이 영향받고 있을 뿐 아니라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수익성도 악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로화 하락에 따른 ‘시나리오 경영’에 돌입한 상황인데 달러·유로 환율이 1.2 대 1 이하로 떨어지면 시나리오부터 다시 짜야 할 판”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경영계획을 만들 때 달러·유로 환율을 1.3 대 1 수준으로 예상했던 삼성전자는 최악의 경우 1.25 대 1, 1.2 대 1 상황을 가정해 컨틴전시 플랜(비상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러나 1.2 대 1이 깨질 가능성이 제기되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달러·유로 환율은 1.3 대 1 수준에서 지난 5월 초부터 급락했다. 지난 17일엔 올 들어 최저치인 1.21로 떨어졌다. 석 달 새 8%가량 하락한 것이다. 유럽 위기 발생 전 몇 년간 이 비율은 1.4~1.5 대 1 수준이었다.

삼성전자의 유럽 매출은 2010년 기준으로 36조1298억원으로 전체 매출(154조6300억원)의 23.3%를 차지한다. 스마트폰 TV 가전 등 세트 부문 최대 시장이 유럽이다.

LG전자도 전체 매출의 13%가 유럽에서 발생한다. TV·휴대폰·PC 등은 핵심 부품과 재료는 주로 달러로 사오지만 유럽에서 제품을 팔 때는 유로화로 받는다.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면 판매 대금 가치가 줄어드는 반면 부품은 달러화로 사야 하므로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반도체, LCD(액정표시장치) 등 부품은 제품 결제나 원자재, 장비 거래를 달러화로 해 환차손 우려는 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유로화가 급락하면 환손실을 입는 글로벌 PC 업체들이 유럽 내 PC 생산 및 주문을 연기하기 때문에 반도체 최종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이 글로벌 PC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30%에 달한다.

전자업계는 △원가절감 △제품 구조조정 △프리미엄 제품 확대 등 유로화 가치 하락을 상쇄하기 위해 뛰고 있다. 원가를 최대한 낮춰 마진을 높이고, 마진율이 높지 않은 제품은 철수시키는 한편 비싼 프리미엄 상품을 파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75인치 스마트TV를 내놓고, LG전자가 84인치 초고해상도(UD) TV를 출시한 것도 유럽불황 극복을 위한 전략이다. 또 유럽 현지의 부품 조달을 강화하고 아시아, 중남미, 미국 등 유럽 이외 지역의 판매 비중을 늘리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전자업계 고위 관계자는 “가장 확실한 대책은 환율이 떨어지는 만큼 제품의 판매 가격을 올리는 것”이라면서도 “환율 하락을 판매가에 반영하면 그러잖아도 좋지 않은 시장 상황에서 제품경쟁력 자체가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고 말했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유로화는 현지 매출에 비해 현지 조달 등으로 쓰는 지출이 적은 편이어서 환차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통화”라며 “유로화 노출이 많은 기업은 2분기 실적부터 여파가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