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애란 씨(32·사진)는 ‘공감의 작가’다. 젊은 독자들은 그의 문장에 위로받으며 용기를 얻고 그가 그린 인물들에 깊은 동질감을 느낀다. 그의 새 소설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에는 등단 10년차를 맞은 작가의 더 성숙하고 확장된 세계가 확연히 드러난다. 제목인 ‘비행운’은 비행기가 지나갈 때 남기는 구름인 동시에 ‘행운이 아닌’이라는 뜻도 된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작품에는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루의 축’에는 공항에서 청소 일을 하는 50대 중년 여성이 나온다. 모두가 떠나는 국제공항에서 일하지만 사실 그의 삶은 ‘국제’나 ‘세계’ 따위의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떠나지 못하는, 떠난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그의 삶은 그저 위태롭게 부유(浮遊)할 뿐이다. 남편의 실족사와 아들의 의도치 않은 범죄. 소박한 행복을 꿈꾸던 가족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서서히, 조용하게 부서져간다. 그는 이용객이 두고 간 고급 빵집의 마카롱을 씹으며 담담히 되뇌인다. “왜 이렇게 단가… 이렇게 달콤해도 되는 건가….”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의 주인공은 30대 후반의 택시 기사다. 철 없는 젊은 시절을 고향에서 보내고 상경해 행복을 꿈꾸지만, 사랑했던 조선족 아내는 곧 세상을 뜨고 만다. 함께 중국으로 가서 행복하게 살기로 한 약속은 아내가 녹음해준 중국어 테이프에만 남아 있다. “워 더 쭈어웨이 짜이날?(제 자리는 어디입니까?)” “리 쩌리 위안 마?(여기서 멉니까?)” 그는 조그맣게 이 문장들을 중얼거리며 그저 정처 없이 택시를 몰 뿐이다. 전작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인물들이다.

김씨는 “나이가 들면서 등장인물의 세대와 작품 속 공간의 확장이 자연스레 일어나는 것 같다”고 했다. 전작에 등장하는 20대 초반의 인물은 집, 학교, 편의점 등에 주로 머물렀지만 이제는 택시로 서울을 누비기도 하고, 외국에 나가기도 한다는 것이다.

“20대에 쓴 작품들은 어른들에게 책임을 묻는 시선이었어요. 지금은 그와 동시에 책임을 지는 정서도 생긴 것 같습니다. 전작에는 소비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많았지만 이번엔 소비의 주체도 등장합니다.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세대가 된 거죠.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이라면 불가피하게 갖게 되는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