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채만식 "나 가거든 들국화로 덮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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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가거든 상여는 쓰지 말 것이며 널 위에 뉘여 들국화, 산국화로 덮어달라.” 단편소설 ‘레디메이드 인생’(1934)으로 유명한 소설가 채만식 선생이 생전에 남긴 유언이다.
일제 강점기 사회 부조리를 풍자한 소설을 주로 썼던 선생의 집안은 부유했다. 전북 옥구군의 내로라하는 부농이었다. 보통학교를 나온 뒤 일본 와세다대 유학도 다녀왔다.
부유한 환경 탓이었을까. 선생은 결벽증 환자였다. 남의 집에 식사하러 갈 때는 수저를 챙겨갈 정도였다. 오죽하면 남이 쓰던 상여도 마다했을까.
결벽증은 그의 작품에도 투영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락한 현실을 사는 한 여인의 비극적 운명을 그린 ‘탁류’(1937)가 그렇고, 반민족적 행태를 일삼으며 가문의 부귀만을 좇는 사람들을 비판한 ‘태평천하’(1938)도 그랬다.
동아일보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1936년 전업작가로 전환한 선생은 다작을 쏟아냈다. 22세 등단 뒤 26년간의 작가 생활 중 300여편의 소설 희곡 등을 썼다. 지식인의 고뇌, 하층민의 몰락 등의 내용을 주로 다뤘지만 말년엔 오점도 남겼다. 광복을 눈앞에 두고 ‘여인전기’ 등의 친일소설을 썼던 것. 그러나 해방 뒤 낙향해 과오를 고백하는 자전소설 ‘민족의 죄인’을 내놓았다. 1950년 한국전쟁 직전 폐결핵으로 눈을 감았다. 일제강점기 가장 투철한 사회의식을 가진 사실주의 작가로 평가받는 선생이 태어난 날이 110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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