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호 북한 군총참모장의 전격적인 해임과 김정은의 원수 등극은 북한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예견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이영호 군총참모장 해임을 군과 민의 돈줄 다툼, 외화벌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나, 이는 이번 사태의 발단일 뿐, 그 근저(根底)에는 김정은 체제의 경제변화 시도에 대한 군부의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 선군사상이 지배해온 북한에서 군부는 무소불위 세력으로 군림, 대외협력 사업까지도 좌지우지해왔다. 군부가 외화벌이의 실세로 자리를 굳혀온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왜 하필 지금 문제가 돼 이영호가 숙청된 것일까?

절대 권력자에 복속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군부는 북한 지도부의 강력한 제어 세력으로 존재해왔다.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였던 황장엽도 “군부가 모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정일 위원장 자신도 생전에 “군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었을 정도다.

필자도 이를 확인하는 듯한 이야기를 아주 최근 방문한 중국·북한의 접경지역에서 들은 바 있다. 나진·선봉지역을 드나들며 대북 지원 사업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김정일 위원장이 생전에 나진·선봉 개방을 강하게 채근한 적이 있으며, 개방이 늦어지는 것이 현지에 있는 군대 때문이라면 군부대를 완전히 이동시키라’는 지시를 내릴 정도였으나, 군부가 이에 강력히 맞서는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김정은의 후계 체제가 성립된 이후 북한은 새로운 변화에 휩싸이게 됐음이 분명하다. 권력구조 개편은 물론 외국 물을 먹은 젊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당면한 경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이 가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핏줄인 고모 김경희와 고모부 장성택이 최측근에서 김정은을 보좌하면서 북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을 것이다.

실제 김정은 체제 이후 북한이 변화하려는 노력들을 북한과 중국이 접해 있는 지역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실감할 수 있다고 한다. ‘동항개발구해운유한공사’ 총경리는 지난 6월 단둥에서 개최된 한 학술회의에서 “최근 들어 변화를 위한 북한의 몸부림이 어느 정도인지 피부로 느낄 정도다.

금년 말에 북한이 큰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이런 점에서 북한의 변화에 대한 군부의 견제에 결국 군부 재편이라는 칼을 빼든 것이 이영호 군총참모장 숙청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은의 원수 등극은 군을 견제하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정통 당 관료 출신인 최용해 총정치국장이 강력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내적 변화를 추구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북한 체제가 그야말로 한계에 부딪혀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 경색과 단절은 북한을 미증유의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만들었다. 대남 적대감은 강화됐으나 대중 편향성은 훨씬 더 높아졌다. 북한 장마당에는 없는 것이 없을 정도지만 그 대부분이 중국산이다.

북한을 드나드는 중국 사람들은 “북한의 시장화가 빠른 속도가 전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주민은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다. 나진·선봉에서도 굶어죽는 사람이 있으며, 이 지역 사람들의 상당수가 간, 췌장 관련 질병을 앓고 있다. 주민의 3분의 1이 결핵 양성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영호 북한 군총참모장 해임과 김정은의 원수 등극을 남한은 향후 남북관계의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선군사상의 약화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농후하다. 이를 북한 내부 권력 투쟁의 시작으로 보고,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자기도취적 기대로 연결시켜서는 안된다. 북한이 갑자기 붕괴하면 우리에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큰 혼란과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의 권력 변화를 유심히 보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상호 협력을 통한 북한의 실질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영윤 < 통일硏 명예연구위원남북물류포럼 회장 kimyyn@naver.com >